이달 23일 충치 치료용 충전재와 외과수술에 사용하는 생분해성 봉합원사를 생산하는 중소기업인 ㈜메타바이오메드(대표 오석송)에 희소식이 날아들었다. 코스닥 등록 예비심의를 통과했다는 통보였다. 1990년 치과용 충전재를 만드는 지하 공장에서 출발해 10년 만에 바이오기업으로 성장한 메타바이오메드가 제2의 도약의 발판을 마련한 것이다.
메타바이오메드는 직원 89명이 연간 110억원(2006년 기준) 정도의 매출을 올리는 국내 투자자들에겐 잘 알려지지 업체다. 이 회사의 주활동 무대는 한국이 아니라 미국 중국 러시아 인도 멕시코 등 전세계다. 주력 제품인 생분해성 봉합원사는 세계에서 단 6개사 만이 생산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80여 개국에 제품을 내다팔고 있고, 매출의 95%가 수출에서 일어난다. 올해 무역의 날에는 ‘1,000만불 수출탑’도 수상한다.
■ 현장을 뛰어라
이 달 14~17일 독일 뒤셀부르크에서 열린 세계 최대 규모의 국제의료기기 전시회 ‘2007 메디카(MEDICA)’에 오석송 대표를 비롯해 메타바이오메드의 해외영업 인력이 총출동했다. 단 나흘 사이에 이들은 35개 국가에 800만 달러(약 74억원)어치를 수출하는 계약을 성가를 올렸다. 내년 매출 목표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규모다. 박람회가 끝나자마자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는 오 대표 혼자만 올랐다. 나머지 직원들은 곧장 프랑스 파리로 향했다.
메타바이오메드의 전체 인력 중 해외영업 담당 직원은 10명. 하지만 오창 본사에서 이들 영업맨들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뼈 속까지 해외 영업맨 기질이 다분한 오 대표가 “영업맨은 엉덩이가 가벼워야 한다. 현장에서 바이어를 만나봐야 아이디어도 생긴다”며 채찍질을 하는 통에 해외 영업담당들은 1년의 3분의 2 정도를 해외에서 보낸다.
이 회사가 해외시장에서 빨리 발판을 다질 수 있었던 것은 신기술과 신제품을 선보이는 전시회를 적극 활용했기 때문이다. 메타바이오메드는 해마다 10여 차례 이상 의료기기나 치과용품 관련 국제 전시에 부스를 차린다.
세계 각국에서 바이어들이 모여드는 메디칼쇼와 덴탈쇼는 해외영업의 최전선. 김해중 기술연구소장은 “최고경영자(CEO)에서 기술개발 연구진까지 모든 인력들이 바깥에 나가서 자신의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정보를 체험하는 것은 제품 판매뿐 아니라 제품 개발에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 사람이 성공의 발판이다
오 대표는 지금의 성공을 거두는데 ‘대인관계’가 큰 자산이 됐다고 말한다. 해외에서도 인맥은 통한다는 것이다.
그가 이 업종에 뛰어든 데는 20년 전 치과재료 생산업체인 미국계 회사 한국슈어프러덕트에서 근무한 것이 계기가 됐다. 오 대표가 이 미국계 회사와 인연을 맺은 것도 인맥 덕분이다. 영어회화를 공부하러 자주 드나들던 서울 이태원의 바에서 알게 된 외국인이 슈어프러덕트 한국법인 대표였다.
메타바이오메드의 초창기 지하공장 시절, 기술력도 확인되지 않은 무명의 회사가 만든 제품을 선뜻 사주는 곳이 없었다. 이 때 월 3만 달러씩 주문을 넣어주며 라인을 가동할 수 있도록 도와준 곳은 일본의 토덴트사.
오 대표가 슈어프러덕트에서 근무하면서 친분을 돈독히 쌓아둔 토덴트사 미우라 사장의 신뢰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금도 오 대표는 국제 전시 등을 나가면 해외 거래선과의 관계를 다지는 데 주력한다.
노사간 상생도 핵심적인 경영철학이다. 이만한 규모의 업체는 직원의 복리후생을 간과하기 쉽지만, 오창산업단지의 바이오부문 공장에는 농구장 헬스장 등 각종 시설이 갖춰져 있다. 구내식당에서는 때때로 임직원들의 비어타임이 마련된다. 생산직의 80%는 5년 이상의 숙련도를 갖춘 이들이다. 회사측은 이런 자유로운 분위기가 생산성 향상에도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고 있다.
■ 새로운 시장을 찾아라
메타바이오메드는 2001년 현재의 사명으로 변경했다. 명실상부한 바이오 기업으로서 신제품 연구 개발에 본격적으로 나서겠다는 안팎의 다짐이었다.
이듬해 외과수술 후 실밥을 제거할 필요가 없는 생분해성 봉합사 시판을 시작으로 현재 1.2% 정도의 시장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골이식재(인공뼈) 개발에도 성공해 임상실험을 마치고 양산을 앞두고 있다. 현재 한양대와 공동으로 인공뼈에 줄기세포를 부착한 맞춤형 인공조직을 연구하고 있다.
김해중 기술연구소장은 “바이오는 신기술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성장의 발판은 지속적인 연구개발(R&D)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자체 연구소를 운영하면서 전체 인력의 10%에 달하는 9명의 연구진을 확보하고, R&D 투자 비용도 지난해 매출액의 5%에서 올해는 8%에 늘렸다. 지금까지 완료했거나 수행 중인 국책연구과제는 17건에 이른다.
특히 산ㆍ학ㆍ연 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해 중소기업으로서는 어려운 심층적 연구에서도 성과를 내고 있다. 생분해성 봉합사는 전북대 섬유공학과와 협력으로, 골이식재는 과학기술원(KAIST) 및 요업기술원과 공동으로 개발했다.
오 대표는 “의료제품 분야는 부가가치가 엄청날 뿐만 아니라 노령인구의 증가로 시장 성장도 연 10%에 달한다”며 “기술 혁신에 힘쓰는 한편 큰 시장인 미국과 성장 가능성이 높은 중국 인도 러시아 브라질도 더욱 적극적으로 공략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 오석송 대표 경영 노하우/ "국내 의료시장 좁아… 1년 100일 이상 해외서 발품"
오석송(53) ㈜메타바이오메드 대표는 1년 중 적어도 100일은 해외에서 보낸다. 오 대표가 지금까지 쌓은 항공 마일리지는 300만 마일을 넘는다. 지구를 120바퀴 정도 돈 셈이다.
오 대표는 "㈜메타바이오메드는 1990년 메타치재라는 이름으로 설립된 초기부터 내수가 아니라 해외시장을 겨냥했다"며 "국내는 의료자재 관련 시장이 작고 영업 관행이 워낙 진입장벽이 높아 제품 그 자체만으로 인정 받을 수 있는 해외를 타깃으로 했다"고 털어놓았다.
지금의 메타바이오메드는 그가 죽을 각오(?)를 다해 만들어낸 회사다. 오 대표는 꼭 20년 전인 1987년 치과의료용구를 생산하는 미국계 회사 한국슈어프로덕트에 관리이사로 영입되면서 이 업종과 인연을 맺었다. 하지만 극심한 노사분규로 본사가 한국 사업 철수를 결정하자, 그는 89년 회사를 인수해 경영에 뛰어들었다. 이후 2년간 실패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오 대표 역시 인수 6개월 만에 강성 노조 때문에 회사를 포기했다. 그는 35만 달러를 빌려 인도네시아에 진출해 공장을 차렸지만 이마저도 실패하자 자살을 생각하기도 했다.
이 같은 질풍의 시기를 지낸 뒤 선린상고 동창 7명이 모아준 5,000만원으로 시작한 사업이 메타바이오메드다. 오 대표는 "초창기에는 생산을 제외한 해외영업, 관리를 홀로 해내면서도 거의 모든 국제전시에 참가해 새 시장을 개척했다"며 "당시 화장실 가는 시간도 아까워 물도 마시지 않으며 부스를 지켰고, 우리 물건을 홍보하기 위해 몰래 제품을 판매하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실패의 경험에서도 교훈을 얻었다고 한다. 오 대표는 "해외 진출에 실패하지 않기 위해서는 문화적 차이부터 이해해야 한다"며 "외국에 생산공장이나 법인을 세울 때는 현지 동포와 손잡기보다 직접 운영하는 게 정보 유출 등의 위험 요인을 줄여 성공할 확률이 높아진다"고 지적했다.
그는 "코스닥 상장을 계기로 해외영업과 연구 전문인력을 충원하는 등 경영도 더욱 체계를 갖출 것"이라며 "세계 시장에서 미래에 대한 감을 잡기 위해서는 직원에게만 맡기지 말고 최고경영자(CEO)도 흐름을 눈으로 직접 파악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오창=문향란 기자 iam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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