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책에서 나는 “나의 글이 알기 쉽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나의 아내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기 바란다”고 쓴 적이 있다.
내가 1970년대 후반에 영국 런던대학에서 마르크스를 공부할 때 집에 전화를 놓지 않았고 한국 사람과 만나지도 않았다. 박정희 정권의 ‘미친 듯한 빨갱이 색출’에 걸릴까봐 매우 걱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강의를 듣거나 책을 읽은 뒤 혼자 생각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누구와 이야기하고 싶다는 욕구가 자꾸 생겼다. 믿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인 아내를 데리고 동네 술집(펍)에 가서 한참 동안 내가 생각하는 이론을 떠벌리는 경우가 많아지게 된 것이다.
물론 좋은 대학도 나왔고 회사의 총무일을 맡고 있으니 현실 ‘경제’는 나보다 더 잘 알지만 마르크스 ‘경제학’은 전혀 이해하지를 못했다. “잘 모르겠는데”를 연발하니 내가 어쩔 수 없이 점점 더 쉬운 말로 온갖 예를 들면서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 이리하여 나는 남을 설득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이론을 더욱 정확하게 이해하게 것이다.
나는 <자본론> 을 번역할 때 독자들이 이 책을 좀 쉽게 읽을 방법이 없는가에 고심했다. 이 책에는 영국의 파운드 실링 펜스를 화폐단위로 사용하고 있다. 자본론>
왜냐하면 1850년대의 영국 실상을 자주 예로 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영국의 화폐단위는 그 당시 십진법이 아니라 1파운드는 20실링이고 1실링은 12펜스이었다. 따라서 4파운드 5실링 9펜스가 1파운드 15실링 10펜스의 몇 배인가를 알기 위해서는 한참 계산해야만 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번역할 때 어떤 ‘역사적 사실’을 가리키는 경우를 제외한 모든 경우에 영국의 화폐액을 한국의 원으로 고쳤다.
4파운드 5실링 9펜스는 1,029펜스이기 때문에 1,029원으로 번역하고 1파운드 15실링 10펜스는 430원으로 번역한 것이다. 책 읽기가 훨씬 쉬워진 것이 아닌가?
김수행ㆍ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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