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적인 장면이 될 것이라던 제작진의 자신감은 허세가 아니었다. 공연 시작 후 40여분 만에 등장하는 1막의 결승전(The Final). 경기장 관람석을 비추듯 무대를 넘어 객석까지 퍼지는 뱅크조명의 등장, 이어 심판의 킥오프 사인과 함께 공연장은 어느새 축구 경기장이 됐다.
사실감을 높이기 위해 현직 여자축구팀 코칭 스태프의 조언까지 구해 만든 세련된 안무, 일명 ‘사커댄스’는 박수가 아깝지 않을 만큼 다이내믹했다.
16일부터 공연 중인 뮤지컬 <뷰티풀 게임> 의 1막 결승전 장면은 올해 공연예술을 통해 접한 최고의 명장면 중 하나로 기억될 것 같다. 뷰티풀>
앤드루 로이드 웨버가 북아일랜드 자치주의 수도 벨파스트 축구팀 선수들의 실화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었다는 <뷰티풀 게임> 은 축구 선수로 성공하고 싶은 순수한 청년 존(박건형)과 사회 개혁적 성향의 축구팀 동료 토마스(김도현)의 우정과 배신이 드라마의 큰 축인 만큼 축구와 관련된 장면에 공들인 흔적이 역력했다. 뷰티풀>
경기를 치르는 그린팀과 오렌지팀의 선수가 7명씩 뿐이고 무대에 공이 등장하지 않는 게 실제 경기와의 차이라면 차이다. 무대 전체를 3층의 감옥으로 꾸민 2막의 감옥 장면(Dead Zone)도 관객들 사이에 두고두고 이야기될 법하다.
하지만 기억에 남는 명장면이 많다는 것이 재미와 작품성을 보장할 수 있는지 모든 관객이 동의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존과 토마스가 대립하게 되는 배경에는 피침략자로서 아일랜드 민족의 한과 영국인에 대한 반감이 뿌리 깊이 박혀 있다.
2000년 <뷰티풀 게임> 의 영국 초연 당시 많은 이들이 새삼 거장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천재성을 논한 것도 터부시되는 사회적 이슈를 과감히 뮤지컬의 소재로 끄집어낸 까닭이다. 뷰티풀>
그러나 이번 공연은 이를 한국화하는 과정에서 젊은이들의 치기어린 배신과 갈등만 강조해 우정을 뒤로하고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게 되는 주인공들의 운명적 비극을 납득하기 어려웠다. 존과 메리의 신혼 첫날밤 장면 등 웃음 코드에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할애한 것도 감동을 축소시킨 요소다.
2004년 <토요일 밤의 열기> 이후 3년 만에 뮤지컬 무대로 돌아 온 박건형은 안정적인 연기로 극의 중심을 잡았지만 단 세 작품 만에 주인공을 꿰찬 메리 역의 난아는 감정선을 잘 살리지 못해 한국 뮤지컬계의 배우 기근 현상을 실감케 했다. 토요일>
이 작품에서 축구는 단순한 이야깃거리 차원을 넘어 슬픔을 녹여내는 대상으로 큰 몫을 차지해 자연스레 ‘잘 빠진’ 남자 배우들의 상반신 노출이 잦고, 이는 의도하지 않게 여성 팬을 위한 확실한 서비스가 됐다. 축구를 소재로 한 작품인지라 남성 관객의 반응도 유난히 뜨겁다.
라이선스 공연이긴 하지만 근래 선보였던 한국 뮤지컬로는 드물게 안무의 힘이 돋보인 점도 장르의 다변화 차원에서 높이 평가 받을 만하다. 뮤지컬의 볼거리를 중시하거나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음악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 관객이 특히 반길 공연이다. 2008년 1월 13일까지 LG아트센터. (02)501-7888
김소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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