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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화 종이 그림전 '프로세스'/ 존재와 부재… 그 과정을 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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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화 종이 그림전 '프로세스'/ 존재와 부재… 그 과정을 그리다

입력
2007.12.03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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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안 보이는 것을 그린다. 결과물은 쓸데없다. 그가 그리는 것은 오직 과정이다.

한국 추상화 1세대인 정상화(76) 화백의 1970~80년대 종이 작품 50여점을 처음으로 공개하는 개인전 ‘프로세스(Process)’가 서울 소격동 학고재에서 열리고 있다. 격조 있는 격자의 단색조 화면은 단순하되 단조롭지 않고, 편편하되 도저한 깊이와 울림을 담고 있다.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선 먼저 그의 유화 작업방식부터 숙지해야 한다. 수도승의 수행 과정 같은 그의 작업은 먼저 캔버스에 3~4㎝ 두께로 고령토와 본드를 발라 말리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 다음 캔버스 천을 가로, 세로로 반복해 접어 격자 무늬의 균열을 만들고, 고령토와 본드를 발라 만든 밑칠을 떼어낸다. 그렇게 생긴 빈 자리를 아크릴 물감으로 메우는 과정을 수도 없이 반복하면서 캔버스에 시간을 지층처럼 쌓는다.

이번에 나온 종이 작품들은 정상화 특유의 이런 떼어내고(데콜라주) 메우는(콜라주) 유화 작업과 동일한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여러 겹의 종이를 포개 부분부분 떼어낸 후 연필과 콩테, 먹과 아크릴 물감 등으로 빈 자리를 메우는 작업을 반복한 데콜라주 작품들, 나무에 바둑판 무늬를 새긴 후 찍어내고 다시 한번 더 깎아낸 후 또 찍어내는 반복 작업을 통해 여백을 향해 소멸해 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목판 작품 등은 한 화면에 교차되는 존재와 부재, 있음과 없음을 웅숭깊게 보여준다.

과정 중심의 그의 철학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작품들은 울퉁불퉁한 표면에 종이를 대고 문지르는 프로타주 작업들. 요철이 도드라지는 자신의 유화작품 위에 종이를 올려놓고 목탄 등의 재료로 표면을 문지른다. 유화와 흡사한 요철 문양을 얻은 후 불필요한 목탄의 흔적을 일일이 지우개로 지워나가고, 그렇게 작품이 완성되면 유화는 폐기한다.

한국과 일본(1969~76), 프랑스(1977~93)를 거쳐 다시 한국에 자리잡은 작가는 이 지난한 과정을 “숨을 차곡차곡 눌러가며 더디게 진행되는 작업”이라고 말했다. 가끔 가슴이 너무 답답할 때면 커다란 징을 친다고 한다. 전시는 24일까지. (02)720-1524.

박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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