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행(48) 민주노총 위원장은 최근 5년 사이 두 차례나 실업자로 지냈다. 금속연맹 부위원장 시절 소속 단위 노조의 투쟁을 돕다가 1년간 감옥에 갔다 나온 2003년과 민노총 내분으로 사무총장 직을 떠난 2006년이 ‘백수’ 신세였다. 그는 두 번의 실업자 생활을 통해 정부의 고용 정책이 얼마나 꽉 막혔는지 피부로 실감했다고 한다.
이 위원장은 “중ㆍ고령자의 재취업이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노동부가 운영하는 고용지원센터의 역할이 중요한데도 센터는 ‘실업급여신청센터’로 전락한 상태”라고 말했다. 센터의 기본 업무인 직업훈련과 취업알선 등 재취업 서비스가 형편없다는 것이다. 그는 “실업자에게 구직 정보를 제공하는 일은 센터의 기본적인 업무인데도 ‘구직자가 알아서 하라’며 뒷짐만 지고 있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상한 실업급여
실업급여 기간과 액수에 대해서도 불만을 토로했다. 생계 걱정 없이 재취업을 준비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는 이유에서다. 현재 실업급여는 고용보험 가입 기간과 보험료 납부액에 따라 최대 8개월간 매월 최고 120만원을 받을 수 있다.
노모 등 여섯 가족의 가장인 이 위원장은 두 차례 실업 동안에 각각 4개월간 매달 약 70만원을 받았다. 모자란 생활비는 저축한 돈 등으로 메워야 했다. 첫번째 실업 땐 실업급여를 받는 동안에 소득이 있으면 센터에 신고하라는 말에 정직하게 한국노동교육원에서 특강을 해 받은 20만원을 신고했더니 실업급여액이 50만원으로 깎여 나오는 황당한 일을 겪었다. 규정상 어쩔 수 없다는 것이 센터 직원의 말이었다. 물론 그 이후로 특강료 등 다른 소득을 신고하는 일은 절대 없었다.
이 위원장은 “우리나라에서 40, 50대는 자녀 교육과 결혼 등으로 가장 많은 돈이 필요한 시기이면서 동시에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일터에서 쫓겨나는 시기”라며 “정부는 실업급여액과 기간을 늘리고, 실업자 자녀의 학자금을 지원하는 등 사회 안전망을 더욱 촘촘히 짜 조기 퇴직한 4050세대들이 부담 없이 제2인생을 준비하도록 도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용보험기금 활용이 관건
사회 안전망을 확충하려면 돈이 필요하다. 이 위원장은 “근로자와 기업이 매달 내는 고용보험 기금을 잘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부가 쌓아 놓고 있는 고용보험 기금 약 10조원만 제대로 써도 재취업 문제가 어느 정도 풀릴 것”이라고 말했다. 효과도 없는 취업 박람회 같은 전시성 행정에 낭비하지 말고 효율적으로 쓰자는 것이다.
이 위원장은 고용보험 기금 활용방안과 재취업 촉진을 논의할 수 있는 노사정 특별기구를 설치하자고 제안했다. 그는 “이상수 노동부 장관에게도 이런 기구를 만들자고 제의해 긍정적인 답을 들었는데, 논의가 진전되지 않고 있다”며 “노동부 관료들이 기구 설치에 동의하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노동부가 고용보험 기금 관리 업무라는 밥그릇을 노사에게 빼앗기지 않으려고 버티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 위원장은 “고용보험료는 노사가 내는데 정작 생색은 정부가 내는 이상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며 노동부의 과감한 인식 전환을 촉구했다.
‘과격 투쟁의 상징’ 지적도 있는 민노총을 이끌고 있는 이 위원장은 “노조도 이제 활동 방향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조가 정치 중심의 투쟁 일변도에서 벗어나 재취업ㆍ재훈련을 지원하는 등 노동시장에 적극 개입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민노총은 이를 위해 내년부터 전국 각 지역 본부를 중심으로 실업자센터를 만들어 주민 속으로 파고 든다는 계획이다.
이 위원장은 “기업인들은 교과서에서 배운 것을 잊지 말라”며 기업의 사회적 책임도 강조했다. 기업은 인건비를 경비가 아닌 미래를 위한 투자로 생각하고 사람 중심의 윤리 경영을 펼치라는 주문이다.
그는 “임금피크제는 임금을 낮추면서 고용을 연장하는 좋은 제도인데, 우리 기업에서는 근로자의 임금을 깎고 구조조정을 하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며 “이런 점에서 채용과 해고를 쉽게 할 수 있는 고용 유연성을 늘리면 재취업이 활성화 할 것이라는 경영계의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고 못을 박았다.
김일환 기자 kev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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