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전윈 지음ㆍ김태성 옮김 / 황매 발행ㆍ416쪽ㆍ9,500원
류전윈(劉震雲ㆍ49)은 류헝(劉恒), 팡팡(方方) 등과 함께 80년대 후반부터 유행한 중국 신사실주의를 대표하는 소설가다.
2004년 국내 첫 소개된 그의 소설집 <닭털 같은 나날> 은 가난한 일상에 치여 사는 소시민의 애환을 현미경 들여다보듯 묘파하며 독자들의 이목을 끌었다. 닭털>
두 번째 번역작인 연작 장편 <핸드폰> 에서도 일상의 자질구레한 면까지 허투루 보지 않으면서 예의 재치있는 문장으로 그것들을 엮어나가는 작가의 솜씨가 빛을 발한다. 핸드폰>
3편의 연작은 유명한 토크쇼 진행자인 주인공 ‘옌셔우이’의 과거-현재-대과거를 오가며 진행된다. 이 세 시대는 각각 (마을에 한 대뿐인) 공중전화-핸드폰-구전(口傳)의 시대에 대응한다.
작가의 문제의식이 집중된 곳은 현재-핸드폰 시대다. 선량하지만 심지가 무른 옌셔우이는 아내에게 외도 사실을 속이다가 핸드폰 때문에 발각돼 이혼 당한다. 헤어진 아내와의 정리(情理)와 외도 상대에 대한 미련을 애써 숨기며 새 연인과 동거하지만 이 역시 핸드폰 관리를 잘못한 탓에 들통나고 만다.
작품 외양은 첨단 통신 기기 때문에 생긴 해프닝의 연속이지만, 그것에 낄낄대는 독서에 그친다면 작가가 꽤 서운해할 듯싶다. 이 소설은 핸드폰으로 상징되는, 끊임없이 말을 하도록 만드는 현대 문명의 폐해를 지적하고 있다.
말이 의사소통에 필요한 적정 수준에서 넘칠 경우 필연적으로 허언이 양산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거짓말은 신뢰의 위기로 이어져 관계에 균열을 낸다. 어쩌면 작가는 방송 진행자를 주인공 삼아 대중매체의 시대인 이 세계 자체가 거대한 거짓말의 기반에 세워진 사상누각이라고 말하고 싶은지도 모른다.
공중전화 시대와 구전 시대의 이야기를 통해 작가는 타인의 진심을 꼭 전하겠다는 선의로 매체의 부재를 극복하는 전근대 사회의 모습을 감동적으로 그린다. 이 낭만적 풍경과 번잡한 핸드폰 시대의 대비가 보색처럼 강렬하다.
이훈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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