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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현의 영화로 보는 세상] 여왕 이전에 여자… 고뇌와 소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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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현의 영화로 보는 세상] 여왕 이전에 여자… 고뇌와 소명

입력
2007.11.22 0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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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 에이지’라고 했다. 16세기말의 영국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럴 만하다. 신ㆍ구교도의 대립을 명분으로, 자국의 세력확장을 속셈으로, 벌어진 종교전쟁에서 절대 약세였던 영국이 세계 최강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침몰시키고 유럽의 패권을 차지했으니까.

그 ‘황금시대’를 연 주인공이 바로 여왕 엘리자베스 1세(1533~1603)다. 25세에 왕위에 올라 ‘대영제국’을 만든 그녀였기에 당연히 영화의 단골손님이 됐다. 역사, 그 가운데에서도 ‘영광의 시대’를 통해 현실의 지혜를 얻고자 하는 이유에서만은 아닐 것이다. 영웅에 대한 영국의 자부심과 향수가 배어있는 것도 숨길 수 없다.

더구나 그 영웅은 여자다. 그것도 평생을 처녀로 살다간 여왕. 당연히 호기심도 생긴다. 역사가 기록하기 꺼렸던, 여왕이 아닌 여자로서의 감정과 삶에 대한 상상도 해봄 직하다. 그녀를 등장시킨 이전 영화들도 그랬고, 22일 개봉하는 <골든 에이지> (감독 세카르 카푸르)도 그렇다.

신대륙 탐험가 라일리(클라이브 오웬)와의 사랑이 단골메뉴가 된 것은 당연하다. 여왕이 아닌 여자로서 그 사랑에 푹 빠져보고 싶은 욕망, 그 사랑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시녀 베스를 선택한 라일리에 대한 배신감, 베스에 대한 질투, 주름살에 대한 걱정.

여기에 반역죄로 사촌동생 메리를 처형해야 하는 인간적인 괴로움과 여자로서 전쟁을 치러야 하는 두려움까지. 이런 모습을 통해 엘리자베스(케이트 블란쳇)는 우리에게 묻는다. ‘도대체 왕의 자리가 뭐 길래, 이렇게 많은 고통을 감수해야 하나’ ‘남자 왕과 달리 왜 여왕은 여자로서 사랑 받는 기쁨을 누릴 수 없나.’

그렇지만 영화도, 그녀도 절대 위험한 상상이나 모험을 강행하지 않는다. 여왕이기 때문에 주어진 운명과 질서에 순응하고, 여왕으로 살 수 밖에 없기에 포기한다. 영화도 여왕도 절대 ‘품위’를 잃는 일은 없다. 그리고 스스로 해답도 찾아낸다. 이 모든 선택이 신이 그렇게 하도록 했다는, 바로 ‘소명(召命)의식’이다.

엘리자베스 1세는 외친다. “나는 결혼을 하지 않았기에 남편과 아이가 없다. 나는 국민의 어머니다.” “신은 나에게 이런 힘든 짐을 감당 할 수 있는 힘을 주셨다.”고. 때문에 그녀는 그 신이 주신 힘으로 자유를 지켰으며, 자기 영혼까지도 ‘조국’에 바치기로 한다.

영화는 소명의식은 라일리의 배신을 용서하게 만들었고, 사촌 메리의 처형이 준 죄책감에서 벗어나게 했으며, 폭풍보다 무서운 전쟁의 두려움을 극복하고 승리할 수 있는 용기를 주었으며, 평생 ‘처녀 여왕’으로 살면서 영국 국민들의 자유와 행복을 지키는 평화와 번영의 골든 에이지를 만들었다고 말한다.

이쯤 되면 그 소명이 설령 거짓이나 엘리자베스 혼자만의 착각이라 하더라도 값지다. 그 덕분에 그녀는 45년 동안이나 국가의 번영과 발전을 위해 자신의 권력과 열정을 바쳤으니까.

사실 그녀와 반대로 소명이란 이름아래 권력을 잡아 개인의 탐욕을 채우고, 부패와 잔인한 정치로 국민들의 피와 눈물을 흘리게 한 지도자들이 얼마나 많았나. 우리 곁에도 지금 ‘소명’을 받았다고 외치는 사람들이 여럿 있다. 그들은 하나같이 ‘자신이야말로 대한민국의 골든 에이지를 열어갈 운명적인 지도자’라고 주장한다. 엘리자베스 1세가 보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문화대기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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