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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침묵 깬 조경란 장편소설 '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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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침묵 깬 조경란 장편소설 '혀'

입력
2007.11.22 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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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우리는 만난 적이 있다> 이후 6년, 소설집 <국자 이야기> 이후 3년만에 소설가 조경란(38ㆍ사진)씨가 장편 <혀> (문학동네 발행)를 출간했다. 등단한 1996년부터 2004년까지 창작집 4권, 장ㆍ중편 4권, 산문집 1권을 펴내며 왕성하게 창작했던 작가이기에 이번 신작을 내기까지 걸린 기간은 ‘긴 침묵’이라 불러야 할 것 같다. 조씨는 슬럼프였다고 말했다. “3년 동안 미국, 독일, 프랑스 등 해외 체류할 일이 많았다. 무엇보다 더 좋은 소설을 쓸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컸다. 첫 문장을 기다리는 기간이 길어졌다.”

<혀> 는 베테랑 요리사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이다. 11년 전 두 달간 요리학원에서 가장 간단한 레시피(recipe)인 제빵 기술을 배워 첫 장편 <식빵 굽는 시간> 을 쓸 때부터 별러온 작품이다. 취재를 위해 ‘세상에서 가장 말 붙이기 힘든 부류’라는 요리사들을 찾아가 괜한 말을 걸고 너스레를 떨었다.

요리사의 마음이 열리자 금단 구역인 주방 문도 열렸다. 그렇게 세 군데 식당에서 요리를 배우고 무수한 질문을 던졌다. 작품 전개의 정점에 등장하는 혀 요리도 직접 만들어 먹어봤다. 덕분에 <혀> 는 레시피와 요리 재료 묘사로 인물 심리 및 상황 대부분을 은유하는, 기예에 가까운 리얼리티를 확보했다.

조씨의 전작과 달리 <혀> 는 관능적이다. 주인공에게 요리와 사랑은 동격이다. “음식을 먹을 때 입술은 피가 몰리면서 붉어지고 부풀기 시작한다. 사랑을 나눌 때의 성기들처럼.”(29쪽) 차라리 시(詩)를 떠올리게 하던 섬세한 문체 대신 속도감 있는 서사를 앞세운 점에서도 작가의 실험 정신이 감지된다. 조씨는 1월부터 7월까지의 7개 장으로 작품을 구획하고 주인공의 심리 묘사보단 파국적 결말로 치닫는 사건 전개에 초점을 맞췄다.

하지만 신작의 주인공이 작가 특유의 ‘소통불능의 현실 속에서 자기 내면에 유폐된 인물’(평론가 서영인)인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자신이 운영하던 요리 교실의 수강생에게 7년간 동거하던 남자 친구를 뺏긴 주인공은 잃어버린 사랑에 집요하게 매달린다.

신변과 심경을 철저하게 레시피와 요리 재료로 치환한 문장들은 옛 애인을 향한 요리사의 집착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뛰어난 미장센이다. 달라진 점도 있다. 기존 조경란 소설의 인물들이 외부적 고통에 무력한 존재였다면, <혀> 의 주인공은 실연의 상처를 분노로 치환해 매우 폭력적인 방식으로 복수를 감행한다. 7월의 폭염까지 작열, 서늘하도록 뜨거운 결말이다.

조씨는 “작품 완성도는 독자들이 판단할 몫이지만, <혀> 를 통해 바람직한 방향으로 슬럼프를 벗어날 수 있어서 스스로가 기특하다”며 웃었다. 예전의 창작력을 완연히 회복한 듯 그는 “내년에 다섯 번째 창작집과 함께, 아이를 유괴한 한 젊은 여자에 관한 장편을 내놓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훈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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