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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인생] 권선징악 담은 고담소설, 내 인생의 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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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인생] 권선징악 담은 고담소설, 내 인생의 보물

입력
2007.11.22 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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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한글을 보지도 못하게 하고 쓰지도 못하게 하던 일정 말기. 나는 동네에서 드물게도 11세 때 한글을 깨우쳤다.

마을 어느집에 편지가 배달되면 내가 읽어주었고 마을 아주머니들이 친정어머님이나 친구에게 편지를 하고 싶을 때면 어린 나에게 부탁을 하셨다. 내깐에 문장을 써서 편지를 써주면 흐뭇한 모습으로 고마워하시던 그분들의 모습이 지금도 선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내 유년시절을 채우고 있는 기억은 마을 사람들에게 고담소설을 읽어주던 일이다. 마을에서 고담소설 잘 읽어주기로 소문났던 선친의 영향인지 어린 나이에도 내 책 읽는 솜씨가 그럭저럭 괜찮았나보다.

보통 저녁을 물린 후 시작해 새벽 동틀 때까지 읽어주곤 했는데 그런 강행군이 어린 나에게 별로 힘들지 않았던 것 같다. 물론 동네친구들이 밖에서 연도 날리고 썰매도 타는데 동네부인들이 책을 읽어달라고 하면 골을 내기도 했었다.

힘들 때면 일부러 꾀를 내어 지루한 목소리로 소설을 읽어 듣는 사람들을 곯아 떨어뜨리게도 했는데 지금도 그 일을 생각하면 미소가 머금어진다.

요즘에는 지식, 취미, 오락거리를 전달하는 매체가 다양하지만 당시에는 고담소설이 지식전달 매체로 큰 역할을 했다. 어질고 착한 일을 하면 반드시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고, 초년에 고생하면 말년에는 큰 행복 속에서 산다는 것이 고담소설의 기본이다. 우리 순박한 국민들은 비록 글은 몰라도 남이 읽어주는 소설에서 지식을 얻은 것 같다.

그 시절에는 예절에 벗어나는 행동을 하거나 이기적인 행동으로 자기 욕심만 채우면 이웃과 마을에서 상종을 안했다. 그래도 개과천선을 하지 않으면 대동회를 소집해 몰아내는 풍속도 있었다. 이러한 풍습은 고담소설을 교과서로 살아왔기 때문이 아닐까.

얼마전 인사동 경인미술관에서 1910~1950년대 간행된 고담소설의 전시회가 열렸다. 개막식 때 <장화홍련전> 의 한 대목을 읽었더니 그곳을 찾은 문인들, 시인들의 찬사가 그치지 않았다.

“책을 읽을 때 음악처럼 읽는 나라는 처음 보았다”고 신기해 하는 외국인 관광객들도 많았다.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았던 보따리 속의 옛날 이야기책들. 내 나이 70이 넘었지만 생각해보니 그것들이야말로 내 인생의 보물 1호가 아니었던가.

정규헌ㆍ고담소설 강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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