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실업 기아자동차(현 울산 모비스) 감독 시절이던 80년대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86년 한기범 유재학, 87년 김유택, 88년 허재, 89년 강동희가 잇따라 신인으로 들어왔다. 이들은 워낙 기량이 출중하기도 했지만, 기아가 창단 초창기인 터라 입단 첫해부터 주전의 행운을 누릴 수 있었다.
97년 출범한 프로농구(KBL)에서 매년 걸출한 신인이 2, 3명 배출되긴 했으나 곧바로 주전을 꿰찬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서장훈(전주 KCC) 현주엽(창원 LG) 김승현(대구 오리온스) 김주성(원주 동부) 정도만이 입단 첫 해부터 주전으로 뛰었을 뿐, 대다수는 수년간 시련을 겪어야 했다.
올 시즌 KBL에 유독 씨알 굵은 새내기들이 많다. 포인트가드에 ‘매직 키드’ 김태술(서울 SK), 슈팅가드에 정영삼(인천 전자랜드)과 이광재(동부), 스몰포워드에 탄탄한 수비와 슈팅을 겸비한 양희종(안양 KT&G), 파워포워드에 함지훈(모비스)과 이동준(대구 오리온스) 등이 활발하게 코트를 누비고 있다.
올 시즌 새내기들이 코트를 ‘접수’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외국인선수 선발제도 변경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각 팀은 외국인선수를 자유롭게 뽑았으나 올해는 드래프트를 통해 일괄 처리했다.
드래프트제가 실시되면서 외국인선수의 기량은 예년에 비해 떨어졌다는 단점이 드러나기도 했지만 긍정적인 변화도 있다. 외국인선수의 기량이 떨어진 틈을 타 국내 선수들, 특히 새내기들이 기회를 잡고 있다.
그렇지만 ‘풍요 속의 빈곤’이라는 말처럼 아쉬운 부분도 없지 않다. 뛰어난 새내기들이 대거 등장했지만 여전히 정통 센터는 찾아보기 어렵다. 함지훈과 이동준도 스타일상 센터라기보다 파워포워드에 가깝다.
훌륭한 센터는 어느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는 게 아니다. 지속적인 투자와 발굴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각 구단이 유소년 농구교실과 장신선수 발굴 등에 더욱 노력하고 투자했을 때 ‘제2의 서장훈’, ‘제2의 김주성’이 탄생할 수 있다.
전 SKㆍ기아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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