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화 주도의 세계경제 질서인 ‘팍스 달러리움’(Pax Dollarium)이 흔들리고 있다.
급격한 가치 하락으로 세계 기축통화로서의 위상에 상처를 입고 있는 달러화가 급기야 ‘팍스 달러리움’의 근간이랄 수 있는 ‘페트로(석유)-달러 체제’마저 도전 받는 양상이다.
17, 18일 사우디 아라비아 리야드에서 7년만에 열린 석유수출국기구(OPEC) 정상회담이 환경문제를 논의한다는 의도와 달리 약달러에 대한 격전장으로 변했다는 점은 시사적이다. 특히 원유결제 통화를 달러 대신 다른 통화로 바꾸자는 이란과 베네수엘라 등의 요구에 밀려 OPEC이 결국 결제 화폐 변경 문제를 공식 연구키로 결정한 것은 앞으로의 달러 운명에 적잖은 파장을 예고한다.
달러는 국제 최대 무역상품인 원유의 유일한 결제화폐로서 배타적ㆍ독점권 교환권을 누려왔다. 이는 베트남전 등에 따른 미국 정부의 달러 남발로 달러 패권이 위기에 처했던 1970년대 초 미국과 OPEC의 비밀협정에 의한 것으로, 달러가 세계경제의 기축통화로 회생할 수 있었던 버팀목이었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 이유 중 하나가 사담 후세인 정권이 원유 결제화폐를 유로화로 바꾸려 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제기되기도 했다.
달러 패권의 상징인 이 같은 독점권이 위협받고 있는 것은 최근 3년간 달러 가치가 30% 가량 떨어지는 등 달러 약세가 용인할 수 있는 수준을 벗어났다는 분석 때문. 달러로 환산되는 원유의 실제 구매력까지 떨어져 산유국들의 불만도 폭발 일보직전이다.
하지만 원유 기축 통화를 다른 통화로 대체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어렵다. 기축통화 변경 시 달러 가치 붕괴로 산유국들이 보유한 수천억 달러 규모의 달러 자산이 폭락하는 자충수가 되기 때문이다. 기축통화 변경 논의가 미국을 향한 정치적 압박 수단이란 지적이 나오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유일 초강대국의 지위를 누렸던 미국의 패권이 중국 러시아 유럽연합(EU)의 등장으로 흔들리는 것과 궤를 같이해 달러화의 위상이 약해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전세계 외환보유액의 미 달러화 자산 비중은 2001년까지 70%를 유지하다 지금은 65% 밑으로 떨어진 반면, 유로화는 15~16%에서 25%로 확대됐다.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기축통화의 달러 독점 시대에서 과점 시대로 넘어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송용창 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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