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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USB' 마치 분신 인듯…나를 확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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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USB' 마치 분신 인듯…나를 확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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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1.22 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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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외부인의 출입이 철저하게 통제된 한 중견 IT 기업의 연구소 심장부. 이 분야에서 내로라하는 연구진 수십명의 연구결과가 중앙컴퓨터에 차곡차곡 저장돼 있다. 경쟁기업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은 이 기업 연구소장 A씨는 슬그머니 USB(Universal Serial Bus) 메모리를 중앙컴퓨터 단자에 넣는다.

복사를 완료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몇십 초. 10년 넘게 축적된 연구결과가 초당 60메가의 전송속도로 USB에 고스란히 담겼다. 1996년 첨단 첩보 장비로 눈길을 끌었던 영화 <미션 임파서블> 에서 톰 크루즈가 같은 양의 정보를 빼내는데 사용한 CD(콤팩트디스크)라면 1시간은 족히 걸렸을 터. 톰 크루즈가 울고 갈 만큼 USB의 진화는 눈부시다.

안녕하세요. USB메모리에요. 흔히 USB라고 부르죠. 요즘 저를 귀여워해 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핸드폰 고리, 목걸이 같은 액세서리로도 인기를 끌고

있죠. 생일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2000년쯤 태어났어요.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보다 덩치는 조금 작아졌지만 능력은 훨씬 커졌답니다. 어렸을 때는 데이터를 주고받는 속도가 1초에 1.5메가바이트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60메가바이트로 40배나 빨라졌죠. 제 뱃속도 엄청나게 커졌어요.

어렸을 때는 기껏해야 32메가바이트였는데 지금은 1,000배나 커져서 32기가바이트 정도는 너끈하게 넣을 수 있죠. 제 친구들 자랑도 빼놓을 수 없어요. 저장한 음악을 어디서든 들려주는 MP3 USB를 비롯해 녹음을 하거나 핸드폰을 충전할 수 있는 다재다능한 친구들도 많답니다.

그뿐일까요? 저는 제 주인의 또 다른 얼굴이기도 하죠. 인터넷 뱅킹 서비스를 이용할 때 사용하는 공인인증서, 증명사진, 보고서 등 USB 내용만 봐도 제 주인이 어떤 사람이라는 것을 대충 짐작할 수 있을 정도랍니다.

제 주인이요, 지난주에는 핸드폰 고리에 달아두었던 저를 핸드폰과 함께 택시에 두고 내렸는데 주운 사람에게 “핸드폰은 돌려주지 않아도 좋은데 USB만은 꼭 돌려달라”고 사정사정하던 걸요.

평소에는 있거나 없거나 신경도 쓰지 않다가 잃어버리고 나서야 허둥대는 꼴이라니, 쯧쯧. 그런데 저를 주운 사람은 더 웃기는 사람이었어요. 주인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얼굴은 어떻게 생겼는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USB를 낱낱이 뒤져가며 조사하는 거 있죠. 어찌나 속까지 후벼대던지 낯 뜨거워서 혼났어요.

된장녀가 화제가 된 적이 있었는데요, 정말 남의 일 같지 않더라구요. 제가 아는 그 친구가 ‘된장 USB’라고 할 수 있죠. 필립스(Philips)와 스와로브스키(Swarovski)가 만들었다는데 고작 1기가바이트짜리가 20만원이 넘는다니 누가 훔쳐가지 않을까 두려워 갖고 다닐 수나 있겠어요. 예쁘다고 누가 집어가기라도 하면 그 안에 들어있던 소중한 정보는 또 얼마나 아까울까요. 어쨌든 사람들은 또 제게 ‘범용성’이라는 꼬리표를 붙이기도 해요.

어떤 컴퓨터에 연결하든지 언제 어디서나 USB 안에 있는 내용을 다 살펴볼 수 있으니 그렇게 말할 만하네요. 새끼손가락보다 작은 제 몸에 2시간짜리 동영상을 몇 편씩 집어넣을 수 있으니, 정보의 집적성과 편의성에서도 단연 으뜸이라고 할 수 있겠죠. 너무 제 자랑만 했나요. 호호.

사랑의 메신저 USB, 그게 제 꿈이랍니다. 저는 커서 사람들 사이에 생긴 오해를 풀어주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USB에 담아 다른 사람에게 그대로 전달하는 거죠. 사람 사이를 연결해주는 ‘휴먼 인터페이스’, 멋지지 않나요? , 잘 알고 있어요.

모든 정보가 개성을 상실한 채 획일적으로 분해되고 재구성되는 기계의 특성상 개인의 지적 특성이 무시되는 것은 분명 안타까운 현실이겠죠. 하지만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넘어서 언제 어디서든 원하는 정보를 저장하고, 꺼내볼 수 있는 장점을 위해서는 그 정도 희생은 감수해야 해요.

영화 <매트릭스> 를 보세요. 주인공 네오가 무술이나 헬기 조종술을 손쉽게 다운로드받아 전혀 배운 적이 없는데도 그 달인이 되는 것. 얼마나 편하겠어요. USB가 사람이고, 사람이 곧 USB가 되는 것. 이게 제가 궁극적으로 꿈꾸는 세상이에요. 여러분 그 세계로 같이 떠나요. 싫다고 해도 어쩔 수 없어요. 하루라도 USB 없이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잠자코 따라오세요!

<도움말> 손동현(성균관대 철학과) 유창식(한양대 전자전기컴퓨터공학부) 교수

허정헌기자 xscope@hk.co.kr유상호기자 shy@hk.co.kr

■ 디지털시대의 '호패'가 된 USB

열여섯살이 되면 허리춤에 호패를 차던 시절이 있었다. 회양목이나 자작나무로 만든 조그만 나뭇조각에, 한 사람의 ‘내용’이 담겼다. 성명과 세차(歲次)부터 관직과 군역, 노비의 경우 얼굴 생김새와 주인의 이름까지 함께 새겨졌다. 한 치 나뭇조각이, 곧 한 인간의 페르소나였다.

21세기, 당신의 페르소나를 담은 호패는 무엇일까. 그런 건 지니고 있지 않다고? 장담 마시라. 당신의 주머니 속에, 혹은 목에 걸려 있는 플라스틱 조각이 당신을 나타내는 호패다. 이 5그램짜리 호패, 혹은 페르소나 단지의 이름은 USB. 이것만 열어 보면, 그걸 지닌 사람의 모습이 대충 그려진다.

못 믿겠다고? 한 번 해보자. 여기 네 사람의 USB를 몰래 ‘까’ 봤다. 성(姓)은 두고, 명(名)은 임의로 바꿨다.

#안용범(31)

‘요도’라는 이름의 그림 파일 몇 개. 금융기관용 공인인증서 한 개. ‘전투지휘장비검열’이라는 이름의 문서 파일 여러 개. ‘사단 비상연락망’이라는 엑셀 파일 한 개. ‘추계 진지공사 보고서’라는 이름의 문서 파일 한 개.

알 것 같은가? 이 사람의 직업은 육군 대위. DMZ가 지척인 곳에서 작전참모 임무를 맡고 있다. 몇 가지 파일이 더 들어있었지만, ‘보안’상 이유로 밝히지 않는다.

#임희진(29)

이 사람 USB는 깔끔하게 디렉토리 정리가 돼 있다. ‘Report’ 폴더엔 상장기업의 회계 정보, 각종 공시자료가 보기 좋게 분류돼 있다. ‘Alternative Investment’ 폴더엔 알아보기 힘든 펀드 관련 자료가 가득 담겨 있다. 그리고 ‘Private’ 폴더. 아, 이건 암호가 걸려 열어볼 수 없다.

이 사람의 직업은 투자신탁회사 펀드매니저. 목걸이 모양의 예쁜 USB 생김새는, 주인이 20대 여성이라는 사실을 강하게 어필한다.

#김선영(33)

금융기관용 공인인증서 한 개. NEIS(교육행정정보시스템)용 공인인증서 한 개. ‘육아일기’라는 문서 파일 한 개. 중간고사 시험문제, 수업 자료….

이 사람은 중학교 교사이자 두 살 난 아이의 어머니. 1기가바이트짜리 USB의 절반 이상은 남편, 아이와 함께 찍은 가족사진들이다.

#주광용(28)

이번엔 너무 쉽다. ‘자기소개서’와 ‘입사지원서’라는 문서 파일이 무려 34개나 들어 있다. 양복 입고 찍은 증명사진 몇 개와, 짜집기한 흔적이 역력한 리포트 파일 몇 개. 설명이 필요할까. 졸업이 코 앞에 닥친 예비 백수, 우리 시대 대학 졸업반의 평균적 모습이다.

유상호 기자 shy@hk.co.kr

■ "가습기도, 방향제도 접속 OK"… USB는 '만능 플러그'

머지않은 미래엔 아마도 플러그를 꽂는 벽의 콘센트에 USB 삽입구가 설치되어야 할지 모르겠다. USB메모리의 사용이 보편화하면서 많은 소형가전 제품이 기존의 플러그를 버리고 USB 형태의 플러그를 단 채 생산되기 때문이다. USB가 플래시 메모리의 한계를 뛰어넘어 생활 속 깊숙이 파고들고 있다.

온종일 책상에 앉아서 일하는 시간이 많은 여성 프리랜서 작가 L씨는 좁은 개인공간에 머물러 있다 보니 컴퓨터 주변에 오밀조밀한 소형 가전기기를 놓기 좋아한다. 방 안의 콘센트는 모두 컴퓨터에 내놓은 터라 가전제품의 플러그를 더 이상 꽂기가 힘들다. 그래서 L씨는 컴퓨터 USB 소켓에 연결해 쓸 수 있는 제품들을 골랐다.

여름엔 에어컨 바람이 닿지 않는 책상의 열기를 덜기 위해 미니 선풍기를, 흡연자인 룸메이트를 위해서는 담배연기 잡아먹는 재떨이를 구입해 쓰고 있다. L씨는 기온이 뚝 떨어진 얼마 전에는 해외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USB 응용제품인 열장갑과 온기가 머무는 슬리퍼를 샀다.

“보통 요즘 PC에는 USB를 꽂을 수 있는 소켓이 3개 이상 달려있다 보니 이런 응용제품을 사용하기가 쉬워요. 하지만 커피가 식지 않게 유지하는 워머와 노트북 보조전등까지 꽂으려면 멀티 USB 소켓이 필요하기도 하죠.”

USB 응용 소형전기제품은 L씨처럼 컴퓨터 앞에서 일상을 보내는 코쿤족들이 주요 고객이다. 팀보다는 개인 위주로 움직이는 이들에게 USB 소켓에 꽂아 사용하는 1인용 가습기, 아로마 분출기, 소형 어항 등은 필수품이자 훌륭한 액세서리다.

인터파크의 이은영씨는 “한 공간에 앉아서 효율적으로 가전기기를 사용하고자 하는 싱글들에게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는 제품이 USB 응용 기기들”이라며 “이 제품들을 컴퓨터와 연결하면 컴퓨터가 소비하는 전력은 늘겠지만 개별적으로 전원코드를 연결하는 것보다 훨씬 경제적이라는 이점도 있다”고 말했다.

G마켓 담당자는 “책상 위 먼지를 제거하기에 적당한 USB 미니청소기가 2,500원, 디지털시계 겸용 보조전등이 9,800원 등 저렴한 제품이 많아 PC 주변을 꾸미고 실용성을 원하는 소비자들이 많이 찾는다”고 말했다.

현재 국내시장에서 판매되는 USB 응용제품들은 150여 가지를 상회한다. 주로 일본 등에서 직수입한 것으로 인터넷 쇼핑몰을 통해 판매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일부가 소규모 국내 생산되기도 한다. 만일 남들이 모르는 독특한 아이템을 찾고 싶다면 직접 해외 사이트를 통해 구하는 것도 방법이다.

일본의 ‘레어 모노숍(www.thanko.jp)’은 USB 응용제품 전용 사이트에 가깝다. 섭씨 40도 정도로 후끈해지는 열찜질기(약 3만원)를 비롯해 두피의 건강상태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소형카메라, 꽃가루 등으로 비염에 시달리는 사람을 위한 마스크형 공기정화기 등 독특한 제품이 많다. 홍콩의 ‘브란도 워크숍(usb.brando.com.hk)’은 USB 제품만을 위한 사이트를 운영한다. 여기서는 믹서기형 알람시계(미화 25달러), CD파쇄기(29달러) 등이 눈길을 끈다.

USB는 이렇게 컴퓨터에서 벗어나 인간의 신체와 오감을 확장시키는 대부분의 전기제품으로 접속된다. 이제 USB의 미개척지로는 인간의 두뇌만 남은 셈일까.

양홍주기자 yang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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