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이 김용철(전 삼성그룹 법무팀장) 변호사의 명의를 도용해 50억원 가량의 비자금 계좌를 개설한 의혹과 관련, 계좌를 가진 우리은행과 굿모닝신한증권의 역할에 의혹이 갈수록 커져 가고 있다.
21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우리은행과 굿모닝신한증권은 자체조사에서 김용철 변호사가 직접 계좌를 개설했다는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계좌를 개설한 우리은행 담당자는 "(김 변호사가 왔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얼버무리고 있고, 굿모닝신한증권측은 "당시 담당자가 퇴사한 후 소재파악이 되지 않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두 금융사 모두 김 변호사의 주민등록증 사본을 보관하고 있지만, 본인 방문 없이 계좌를 개설할 때 필요한 위임장은 보관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 변호사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삼성에 입사한 후 비서가 주민등록증을 달라고 한 적이 있다"며 "그걸 복사해 (계좌개설에) 사용한 것 같다"고 말했었다.
이 과정에서 우리은행이나 굿모닝신한증권이 비자금 계좌개설에 '적극적 공모'를 했는지는 확실치 않다. 아마도 삼성과 같은 VIP고객을 관리하는 입장에서, '특별한 계좌'로 추정되더라도 까다롭게 묻지 않고 실명확인절차 정도는 생략하는 것이 관행이었을 것이란게 금융권의 대체적 관측이다. 그렇다 해도 금융사측이 비자금 계좌개설에 소극적 도움이나 편의를 제공했음은 부인키 어려워 보인다.
금융사의 자체 조사가 한계에 부딪히면서 공은 금감원으로 넘어갔다. 그러나 삼성 비자금 의혹이 폭로된 이후 한달이 되도록 조사착수를 미뤄온 금감원이 앞으로 속시원한 결과를 내놓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
비자금이 어디서 왔고, 어떻게 사용됐는 지 같은 큰 줄기는 금감원 조사범위를 벗어난 것으로 검찰이 밝혀야 할 사안이고, 금감원은 단순히 관여된 금융회사가 실명제법 위반 등 불법을 저질렀는지만 확인할 수 있다.
검찰과 연계하지 않는다면, 그나마 금감원이 자체적으로 실명제법 위반을 확정짓기에도 한계가 있을 수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금감원은 금융회사가 가지고 있는 서류나 전표, 금융회사 직원 면담을 통해서만 조사를 한다"고 말했다. 김용철 변호사를 직접 조사할 수도 없으며, 수사기관의 도움 없이는 전 굿모닝신한증권 담당자를 찾아내기도 어렵다.
이에 따라 금감원이 검찰수사에 앞서 서둘러 두 금융회사의 불법사실을 확정 지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 금감원 관계자는 "자체조사 결과를 가지고 최대한 추정을 할 수는 있겠지만 확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진희 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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