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BBK 대표 김경준(41ㆍ구속)씨의 누나인 에리카 김(43)씨가 21일(한국시간) 김씨와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 간에 작성된 ‘이면계약서’를 공개하겠다고 밝힘에 따라 문건의 내용에 수사팀과 정치권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김씨 측은 줄곧 이면계약서가 ‘이 후보가 BBK의 실소유주’라는 사실을 증명해 줄 것이라고 주장하면서도 지금까지 외부에 공개한 적은 없다. 이에 따라 정치권이 진위 공방에 매달리는 가운데 이면계약서는 검찰 수사의 성패를 가를 수 있는 분수령이자 대선 향배를 결정짓는 중요 변수가 될 전망이다.
■ 이면계약서 내용은
이면계약서의 존재가 처음 드러난 것은 올해 8월. 로스앤젤레스 연방교도소에 수감돼 있던 김씨가 국내 한 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MB Lee(이명박 후보)가 실제로 인터넷 금융회사 LKe뱅크, 투자자문회사 BBK, 인터넷 증권회사 EBK의 지분 모두를 소유하고 있다”고 밝히면서 보여준 것이 이면계약서다.
김씨는 이면계약서가 ‘LKe뱅크는 BBK, EBK의 지주회사로 이들 회사의 자본금은 모두 이 후보의 돈이고 ㈜다스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증명해 줄 것이라고도 주장했다.
김씨 주장에 따르면 ㈜다스가 BBK에 투자한 돈 90억원이 AM파파스를 통해 LKe뱅크의 지분 60%(100억원) 매입과 이 후보, 김씨, 이 후보의 형 이상은씨 등이 주주인 EBK의 자본금 조성 등에 쓰였다.
결국 ㈜다스의 투자금은 순수 투자목적이 아니라 이 후보의 회사 설립을 위한 자금세탁에 쓰인 돈이라는 것이다. 다스가 BBK에 투자한 돈 30억원도 LKe뱅크로 직접 흘러 들어가 이 후보가 지주회사를 설립하는 밑천이 됐다고 김씨는 주장하고 있다.
검찰 조사에서 김씨 주장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이 후보의 “BBK와 나는 아무 관계가 없다”는 주장은 거짓이 돼버린다. 또 ‘김씨가 주가조작에 동원한 LKe뱅크는 이 후보의 것으로 결국 이 후보도 주가조작에 연루됐다’는 의혹도 증명이 되는 셈이다. 결국 이 후보는 대선 행보에서 상처를 입을 수 밖에 없다.
■ 치열한 진위 공방과 감정
그러나 이 후보와 한나라당은 “이면계약서 자체가 조작된 것이며, 김씨의 주장은 허구”라고 일축하고 있다. 일단 비밀계약서 같은 것은 없다는 것이 이 후보 측 입장이다. 이 후보도 19일 방송기자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이면계약서가 있다면 김씨가 지난 3년 반 동안 왜 귀국하지 않았느냐”며 “이면계약서는 없다”고 일축했다.
이면계약서가 실제 위조문건으로 결론이 나면 “이 후보는 위조 전문가 김씨에게 속은 것”이라는 한나라당의 주장에 힘이 실리면서 이 후보 대선가도의 최대 걸림돌도 사라지게 된다.
한나라당 측은 또 “김씨는 2001년 금융감독원이 주가조작 사실을 적발했을 때 자신이 직접 제출한 자술서에 ‘BBK는 100% 김씨 자신의 소유’라고 적시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나라당 클린정치위원회 고승덕 변호사는 “정상적인 계약서와 별개의 이면계약서는 존재하지 않는다”며 “실제 계약서에는 LKe가 BBK의 지주회사가 된다는 내용도 없다”고 밝혔다.
이처럼 양측 주장이 첨예하게 엇갈리면서 대검 과학수사기획관실 산하 문서감정실의 계약서 진위 여부에 대한 감정 결과가 주목되고 있다. 특별수사팀은 이곳에 김씨가 제출한 주식거래계약서 등을 보내, 이 후보의 친필 서명 여부, 문서조작 여부 등을 검증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감정 과정에서는 보통 필체의 떨림 현상, 필압 측정, 디지털 기기를 동원한 잉크 성분 분석 등을 통해 위조 서명 여부를 판단한다.
그러나 검찰은 김씨가 제출한 문서에 있는 이 후보의 서명과 대조할 이 후보의 친필 서명을 아직 확보하지 못해 한나라당 측에 이 후보의 서명을 제출해줄 것을 요청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문서 감정의 경우 보통 7~20일 정도 걸리지만, 대검은 이번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해 최대한 빨리 검증을 끝낸다는 방침이다.
고주희기자 orwell@hk.co.kr 박상진기자 oko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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