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0년 철혈 재상 비스마르크가 이끄는 프로이센 군대가 스당 전투에서 프랑스 군대를 격파한 후 나폴레옹 3세를 사로 잡았다. 파리를 포위한 비스마르크는 외교적 기동전을 벌여 저항 의지를 불태운 프랑스 임시정부를 압박했다.
임시정부 요인들은 엄청난 전쟁 비용을 조달하기위해 런던을 찾았다. 비스마르크는 프로이센이 연승하고 있으므로 승리할 수밖에 없으며, 프랑스가 발행한 채권들은 휴지조각이 될 것이라는 흑색선전을 퍼트렸다.
당시 베어링 브라더스, 로스차일드 등 리딩은행들은 임시정부의 앞날을 어둡게 보고 채권을 인수하지 않았다. 이 때 리스크를 떠안고 프랑스 채권을 인수한 은행가가 나타났다. 미국의 신흥 상업은행인 JS모건(이후 JP모건, JP모건체이스로 바뀜)의 주니어스 모건이었다.
주니어스 모건은 신디케이트를 구성해 임시정부가 발행한 채권을 매입하고, 5,000만달러를 제공했다. 그의 이 같은 모험은 무모한 행동으로 비쳐졌다. 하지만 그는 프랑스 역사에 대한 연구를 통해 채무를 이행하지 않은 사례가 한번도 없었다는 점을 간파했다.
프랑스는 비스마르크에게 패배했지만 외국 돈을 떼어먹지 않는다는 국가적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전쟁 후 액면가에 채권을 사들였다. 패색이 짙은 외국정부의 채권 인수를 감행한 주니어스 모건은 750만달러라는 거금을 벌었다. 이를 계기로 JS모건은 선도은행으로 발돋움했으며, 나중에 월가를 지배하는 금융그룹으로 부상했다.
'안방은행'이란 불명예를 안고 있는 국내 은행들도 최근 세계적인 투자은행(IB)으로 변신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우리 경제규모가 세계 10위권으로 커졌고, 제조업에선 삼성전자 등 글로벌 기업들이 나왔지만, 국내 은행들은 내수시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회사의 현주소를 보면 '금융계의 삼성전자'는 한참 멀었다. 은행과 증권사들이 IB를 지향하며 해외네트워크 구축에 나섰지만 걸음마 단계다. 글로벌IB의 상징인 메릴린치와 골드만삭스의 해외근무 직원수(2006년말)는 각각 1만2,500명, 1만990명으로 국내의 우리(100명)ㆍ신한(97명)ㆍ국민(38명)ㆍ하나은행(25명)과 엄청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정부의 과보호아래 내수에 안주해온 금융회사들은 태생적으로 위험 회피성향의 DNA를 갖고 있는 것이다. 주니어스 모건이 패전중인 국가의 채권을 매입해 나중에 대박을 터뜨린 위험 감수(risk-taking)형 경영을 국내 은행들에선 찾기 힘들다.
최근 '증시권력' 논란을 가져온 미래에셋 박현주 회장. 그는 비좁은 안방을 벗어나 중국 인도 등 유망 시장에 투자하는 고수익 펀드를 잇따라 선보여 시중자금을 빨아들이고 있다.
시야를 해외로 돌려 '블루오션'을 찾고 있는 것에 대해 투자자들이 화답하고 있는 셈이다. 박 회장은 증시권력 논란과 관련, "미래에셋 자산 비중은 국내에선 30%로 높지만 전세계 운용 자산에 비하면 0.2%에 불과하다"고 항변하고 있다. 우리 경제규모에 비하면 갈 길이 멀다는 주장이다.
제조업이 우리 경제를 먹여 살렸듯이 이제는 금융을 수출해 돈을 벌어와야 한다. 해외에서 외국회사와 금융전쟁을 벌여 국부를 창출하는 제2, 3의 박현주가 나오길 기대한다.
경제산업부장 이의춘 e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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