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 회장이 19일 고 이병철 선대 회장 20주기 추모식에 불참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날 삼성에 따르면 경기 용인 호암미술관 내 호암 묘역에서 강영훈 전 총리,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 등 각계 원로와 이 회장의 부인 홍라희 여사, 맏아들 이재용 전무와 부진, 서현 등 두 딸, CJ 이재현 회장, 신세계 정재은 명예회장과 정용진 부회장 등 2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선대 회장 20주기 추모식 및 묘소 참배 행사가 열렸다.
그러나 이건희 회장은 ‘감기 몸살’을 이유로 참석하지 않았다. 삼성 관계자는 “이 회장이 감기몸살이 심해져 오늘 오전 추모식에 부득이하게 불참했다”고 설명했다.
이 회장의 추모식 불참은 이번이 세 번째다. 하지만 해외에 머물던 2002년과 폐암 치료를 위해 미국 체류 중이던 2005년 등 외국에 나가 있을 때를 제외하곤 반드시 모습을 나타냈다. 특히 올해의 경우 ‘추모 20주년’이라는 뜻 깊은 해여서 지난 주까지만 해도 “꼭 참석할 것”이라고 그룹 측에서도 말해 왔다.
이 같은 정황을 볼 때 국내에 있는 이 회장이 부친의 20주기 추도식에 불참한 것을 ‘몸살’이라는 단 하나의 이유만으로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최근 삼성 비자금 의혹에 대한 검찰 조사 및 특검 정국과도 깊은 연관이 있어 보인다. 몸도 많이 불편하겠지만,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 이후 처음 공식석상에 모습을 보였을 때 쏟아질 여론의 관심이 부담스러웠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특히 추도식에는 선친과 함께 한 시대를 이끌면서 친분을 쌓았던 정ㆍ재계, 학계 원로들이 대거 참석하므로, 이들을 직접 응대하는 과정에서 작금의 삼성 사태에 대한 언급을 피하기 힘든 곤혹스러운 상황에 직면할지도 모른다는 판단을 했을 수 있다.
이런 시각을 뒷받침하듯, 이 회장은 공식 추모식 하루 전인 18일 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 등 가족과 함께 선영을 참배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룹 고위 관계자는 “어제 참배를 하고 오셨다. 오늘 참배할 경우 몸도 성치 않은 상태에서 외빈들을 직접 맞아야 하는 힘든 상황이 우려돼 가족만 데리고 미리 다녀온 것으로 알고 있다. 오늘 추도식에는 이 전무가 부친을 대신해 외빈을 접대했다”고 말했다.
재계 관계자는 “이 회장이 선친의 20주기 추모식에도 나오지 않은 걸 보면 삼성 비자금 사태를 얼마나 심각하게 여기는지 알 수 있다”며 “이번 사태가 대선은 물론 내년 총선까지 이어지면서 그룹 경영에 엄청난 타격을 줄 것으로 보고 몹시 고심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삼성 측은 과거 폐암 치료를 받은 전력이 있는 이 회장의 건강과 관련해 ‘중병설’이 나돌자, “감기 몸살로 치료를 받았을 지는 모르지만, 입원한 것은 아니다. 일각에서 나도는 중병설 내지 와병설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한편,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은 이날 추도사에서 “1961년 국가 재건최고회의 때 회장님을 처음 만난 이후 26년간 저에 대한 격려와 관심이 큰 힘이 됐다”며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던 대한민국이 현재 세계 10위권에 육박해 있으며, 이 위대한 경제성장의 최선두에는 회장님이 다져놓은 ‘삼성’이라는 대기업이 있다”고 고인의 업적을 되새겼다.
박진용 기자 hu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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