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보다는 정의를 택한 박찬호(34)의 ‘도박’은 성공할까.
야구 대표팀 주장 박찬호는 18일 밤 개인 홈페이지에 다저스 입단 불발을 감수하고 대표팀에 남기로 한 사연을 소개하며 “올림픽 예선전에 출전하는 걸 알게 된 다저스가 나에게 힘겨운 선택의 길을 안겨주었다”고 밝혔다.
박찬호의 말처럼 대표팀 합류 때문에 다저스와의 50만달러짜리 논 개런티 계약은 원점으로 돌아갔다. 뒤늦게 사실을 파악한 다저스가 계약 합의를 파기할 수도 있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지난해 1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표팀에 합류한 서재응은 WBC 참가 대신 스프링캠프에 참가하라는 소속팀 뉴욕 메츠의 코칭스태프의 지시를 따르지 않고 WBC 출전을 강행했다가 곧바로 LA 다저스로 트레이드된 바 있다. 지금의 박찬호도 당시 서재응과 비슷한 상황에 놓인 것으로 보인다.
박찬호는 올시즌을 마친 뒤 미국과 일본, 심지어 은퇴를 고민했다고 고백할 만큼 나이와 구위를 고려했을 때 내년이 사실상 빅리그 도전의 마지막 기회다. 그러나 박찬호는 자신의 야구 인생을 걸고 태극 마크를 택했다.
대표팀에 대한 향수와 또 한번 나라를 위해 봉사하고픈 박찬호의 애국심이 과감한 결정을 이끈 것으로 보인다. 박찬호는 “많은 생각 끝에 결론을 내리고 나니 시간은 흘러 깊은 새벽녘이었다. 오랜 시간 끝에 내린 결론은 정의로워야 된다는 것이었다”며 다저스와의 계약 대신 대표팀 합류를 선택한 배경을 설명했다.
박찬호는 지난 14일 올린 글에서도 98년 방콕 아시안게임에서 첫 태극마크를 달았던 때를 ‘이산가족 상봉’의 기쁨으로 표현했다. 당시 금메달을 목에 걸며 병역특례를 받은 박찬호는 메이저리그에서 승승장구, 2001시즌 후 5년간 6,500만달러의 대박을 터트렸다. 이후 드림팀 해외파의 든든한 맏형으로 WBC 4강 신화 창조 때까지 늘 대표팀의 맨 앞에서 애국심을 발휘했던 박찬호였다.
그런 그가 눈앞의 ‘현실’ 보다 자신에게 큰 영광과 혜택을 안겨준 ‘국가’를 택한 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르겠다.
성환희 기자 hhs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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