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중석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법의학부장은 지금도 가끔 부검대 앞에 선다.
연구소 서열상으로는 소장 바로 다음인 2인자 위치지만 분소에서 근무 중인 법의관을 포함해 전국에 19명 밖에 안되는 법의관이 연간 6,000여 구에 달하는 시신을 부검해야 하는 현실에서 메스를 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얼마 전 지방의 한 국과수 분소에서는 한 명뿐인 법의관이 예비군 훈련으로 자리를 비우는 바람에 서울 연구소에서 근무하는 법의관이 급하게 내려가야 했던 적도 있었다.
국내 과학수사의 대표인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법의학의 뿌리가 흔들리고 있다. 16일 부검 업무를 맡아 처리할 신규 법의관 채용 접수를 마감했지만 6명 모집에 지원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국과수는 19일 재공고를 내고 22일부터 다시 지원서 접수를 받고 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가 될 가능성이 높다.
법의관 지원 미달 사태는 2002년부터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당시 4명을 뽑는 공고를 냈지만 지원자는 3명에 그쳤다. 그 전에는 경쟁률이 최소 1대 1 이상은 유지돼 왔던 터였다. 이듬해인 2003년에는 1명의 지원자도 나오지 않았고, 2006년에는 모집 공고를 두 차례나 내고서야 1명을 뽑을 수 있었다.
들어 오는 사람은 줄어드는 반면 떠나는 사람은 늘고 있다. 2004년~2006년 3년 간 국과수 법의관 가운을 벗고 대학병원 등으로 이직한 사람은 무려 7명이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법정 정원(TOㆍ25명)을 채우기조차 버겁다.
이로 인해 '이런 식으로 가다간 우리나라의 과학수사가 제대로 이뤄질 수 있겠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부검은 범행의 단서를 확보하고 사인을 밝혀내는 '수사의 출발점'이라는 차원에서 그 중요성과 역할은 더욱 커지고 있다.
그러나 일반 병원 의사에 비해 '일은 고되고 대우는 낮다는 인식'때문에 선뜻 나서는 이가 없는 실정이다. 국과수 법의관 A씨는 "일반 의사의 80% 수준도 안 되는 월급을 받고, 지방 순환 근무도 해야 한다"며 "열악한 조건에 온종일 시신과 씨름 해야 하는 일이라 웬만한 사명감을 갖지 않고선 지원할 엄두가 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과수로 우수 법의학 인력을 끌어오기 위해선 처우 개선은 물론 국과수의 위상 및 법의관의 지위를 업무에 걸맞게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국과수는 행정 조직상 행정자치부 산하의 2급 기관에 머물러 있다.
새로 채용된 법의관은 특별한 경력이 없는 한 5급 사무관부터 출발해야 한다. 같은 국가기관인 경찰병원이나 국립의료원 의사(4급 서기관)보다 한 단계 낮게 시작하는 셈이다.
고대 법의학교실 황적준 교수는 "법의관 전공인 병리학이나 법의학을 선택하는 의대생 자체가 감소하는 것도 원인 중 하나"라며 "법의학 교육의 저변을 확대하기 위해 부검 업무를 국과수가 독점할 것이 아니라 각 대학병원에 분배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원기기자 o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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