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범여 3당 및 한나라당이 각각 발의한 ‘삼성 비자금 의혹 특검법안’에 대해 재검토를 요구하고 나섰다. 특검법이 통과되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청와대측은 재검토를 촉구했을 뿐 특검 자체에 반대하는 게 아니라고 해명했지만 요구 강도가 매우 강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특검이 다뤄야 할 사안에 청와대측에 제공됐을지도 모를 비자금이 포함되어 있는 상황에서 청와대가 특검법 재검토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일견 부적절해 보인다. 그러나 청와대의 재검토 요구에도 나름대로 타당한 근거가 있다는 데 사안의 복잡성이 있다.
특별검사는 원칙적으로 검찰 등 일반 수사기관이 제대로 수사하지 못한 ‘특별한’ 또는 ‘특정된’ 사안을 다룬다. 그러나 범여 3당이 발의한 특검법안은 1997년부터 현재까지 조성된 삼성 비자금 및 관련 로비의혹 등 광범위한 사안을 수사 대상으로 삼고 있다.
청와대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한정된 인원이 한정된 기간에 조사를 해야 하는 특검제도로 이렇게 넓은 범위에 대해 실효성 있는 조사를 해내는 것은 무리다.
현재 수사 중이거나 재판 중인 삼성그룹 지배권 승계 관련 사안들을 특검 수사 대상에 넣은 것이 적절치 않다는 지적 역시 일리가 있다. 수사기간을 200일까지 늘려 잡을 수 있게 한 것도 지나치다.
정치권이 이렇게 무리한 특검법안을 발의한 것은 김용철 변호사가 제기한 ‘삼성 비자금의혹’의 규명 자체보다는 대선국면에 이를 정치적으로 활용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수사범위를 줄이는 대신 ‘노무현 대통령 당선 축하금 의혹’을 가져다 얹은 한나라당도 같은 의도다. 정치권이 법 절차에 따라 특검법을 통과시키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는 한 특검수사가 실시된다.
하지만 특검이 꼭 필요하다면 그에 앞서 범위와 대상을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게 바람직하다. 각자의 정치적 계산 때문에 조정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검찰이 어제 제시한 ‘특별수사ㆍ감찰본부’에 맡길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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