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고급스런 오페라 한 편을 보았다. 이탈리아의 거장 피에르 루이지 피치가 직접 내한하여 연출한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 가 그것이다. (한국오페라단 주최, 11월 15~18일 세종문화회관) 라>
마에스트로(거장) 피치는 5월에도 생경한 바로크 오페라 <리날도> 의 신화적 주인공들을 ‘눈부신 허장성세’라는 기발한 방식으로 풀어낸 바 있다. 리날도>
그러나 이번엔 전혀 다른 스타일로 접근했다. 그는 무대와 의상을 직접 디자인하고 놀라운 색감으로 물들이는 미술적 장치의 대가다. <라 트라비아타> 는 시각적 효과의 품격이 다른 것은 물론, 극의 해석에 있어서도 섬세하기 이를 데 없었다. 라>
피치는 작품의 배경을 나치 점령기인 1940년대로 바꾸었다. 이유가 있었다. 반복해서 이 작품을 연출하며 비올레타라는 여주인공에 빠져들다 보니 겉으로는 타락한 서양 기생이지만 성녀의 내면을 지닌 여인으로 그려내고 싶어졌다.
그러자 부풀어 오른 치마가 위선적으로 보여 그걸 벗겨내야 했고, 그래도 폐병으로 죽어가는 사람이 남아있던 1940년대로 상정한 것이다. 마침 당시 파리가 나치 치하의 암울함 속에서 퇴폐적 향락에 더욱 빠져든 분위기였다는 점도 연출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밖에 비올레타와 플로라의 살롱 분위기를 대조시킨 것이라든지, 두 주인공이 독백을 부르는 2막 피날레를 마치 화해와 용서의 이중창처럼 표현한 것이라든지, 비올레타가 연인의 품이 아닌 발코니로 뛰쳐나가 생을 마감하는 것도 캐릭터에 대한 철저한 분석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20대의 젊은 가수들이었지만 비올레타 역을 맡은 소프라노 이리나 룽구는 올해 7월에 이미 세계 굴지의 밀라노 라 스칼라 가극장에서 비올레타를 불렀고, 내년 초에도 같은 극장의 <마리아 스투아르다> 주역으로 내정되어 있다. 마리아>
알프레도 역의 테너 제임스 발렌티 역시 내년 중반에 라 스칼라에서 <라보엠> 으로 주역 데뷔할 예정이다. 이런 유망주들을 우리 공연계 현실에 부합하는 조건으로 데려온 것 역시 세계적 거장의 능력이었다. 라보엠>
국내 오페라 연출의 수준이 많이 향상되었다고 하지만 별 감흥 없는 연출을 아직도 자주 만나게 된다. 이제 오페라 연출은 더 이상 원작의 ‘재현’이 아니라 새로운 극을 ‘창조’하는 행위다.
창조의 원천은 몇 가지가 있지만,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것은 등장인물의 캐릭터 이면까지 심층적으로 파고들어 설득력 있게 구현하는 것이다. 한번 읽어보면 될 줄거리를 장황하게 설명하는 연출로는 더 이상 감동을 줄 수 없다.
음악공동체 무지크바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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