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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근준의 이것이 오늘의 미술] 줄리 메레투, 뉴욕 미술계가 열광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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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근준의 이것이 오늘의 미술] 줄리 메레투, 뉴욕 미술계가 열광하는 이유

입력
2007.11.22 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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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의 첫 10년도 벌써 종반을 향하는 마당에, 뉴욕 미술계는 이렇다 할 대형 작가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불안감에 휩싸여있다. 그렇다고 함부로 “이제 정말 세계는 민주화돼 ‘세계 미술의 중심’이란 것은 부재한다”고 믿어버리면, 큰 오산.

새로운 미술의 양상이 전개되지 않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래도 분야별로 1등을 가리는 일쯤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회화로 국한하자면, 우승자는 단연 줄리 메레투(1970년생)다.

선머슴 같은 태도에 매력적인 외모까지 갖춘 이 흑인 여성 화가는 건축적 공간들을 메타의 차원에서 재해석한 ‘원격-투시’의 대형 풍경화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그의 존재감이 두드러지기 시작한 것은, 2001년 큰 화제를 모았던 워커아트센터의 기획전 ‘세상의 경계에서 선 회화’에서였다.

메레투의 커다란 그림은 ‘개념적인 층위를 형성하는 혼돈’으로 유명하다. 그의 작품 ‘난폭한 논리학’(2001)을 보자. 실재하는 도시 공간에서 추출한 추상적 선형의 모티프들, 그리고 건축 도면에서 차용한 각종 기호와 다이어그램들이 반복적인 삭제와 수정 과정을 통해 화면 안에 일종의 회오리바람을 일으킨다. 현대회화에서 다층적인 겹구조를 동원한 그림들이 여럿 등장했었지만, 이렇게 개념적 역동성이 드러나는 추상회화의 형식으로 귀결된 적은 없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여러 장점을 갖추고 있다.

1. 어떤 공간에 걸려 있건, 단연 눈에 띈다. (요즘처럼 작가가 많은 세상에서 변별력은 중요한 덕목이다.) 2. 캔버스에서 에너지가 넘쳐나지만 체감 온도는 상당히 낮다. (‘쿨하다’는 말이다.) 3. 옛 추상화에서 느껴지는 품격이 있다. (고로, ‘머리 나쁜’ 수집가들도 좋아한다.) 4. 그의 ‘해체적인 동시에 구조적인 그림’은 글쓰기에 적합하다. (이론가들이 사랑하는 작가는 따로 있는 법.) 하지만 이게 다가 아니다.

작가는 미국 사회에서 ‘우상’의 지위를 약속받는, 공인된 ‘역할 모델’이다. 그는 언론을 통해 흑인 이민자들의 문화에 지속적으로 연루되고 있고, 실제 이주민 흑인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공동체 프로그램 활동에도 열심인 모양이다. 7세 때 에티오피아인인 아버지를 따라 미국 미시건주에서 살기 시작한 그는, 전형적인 이민자/소수자의 범주에 들어맞는다. 아프리카 에티오피아 태생인 데다 세네갈에서 유학한 경력도 독특하다.

자신의 작업을 일종의 ‘자기-문화인류학(self-ethonography)’이라고 설명하는 메레투의 ‘흑인 이미지 마케팅’은, 장 미셸 바스키아의 그것을 연상시킨다. 한때는 머리를 펴고 다니더니, 유명해지고 나서는 흑인 특유의 곱슬머리로 일관하고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과연 이렇게 인종적 위계를 경력 쌓기에 활용하는 것은 작가의 성장에 독이 될까? 아니면 약이 될까?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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