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때마다 불법 대선자금 문제 등으로 홍역을 치른 재계가 한달 가량 앞으로 다가온 대선 정국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극도의 입조심, 몸조심을 하는 분위기가 뚜렷해지고 있다.
일부 총수들은 정치권과 거리를 두기위해 아예 해외 출장을 가는 사례도 적지않다.
재계 본산인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친 기업 정책 노선을 펴는 특정 후보를 지지한다는 오해를 받지 않기 위해 신중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올 7월‘경제 대통령’발언으로 홍역을 치른 조석래 전경련 회장은 이후 정치적인 발언을 삼가고 있는 기색이 역력하다. 다만 기업하기 좋은 환경 조성 방안과 기업규제 개혁을 위한 정책제안서를 각 당 후보 캠프에 전달하는 등 재계 총리로서의 역할은 하고 있다.
주요 그룹들은 지난 대선 때 그룹별로 수십억원에서 수백억원대의 비자금을 유력 대선 후보에 전달하면서 엄청난 고통을 겪은 것을 계기로 정치권과의 거리두기에 부심하고 있다.
현대ㆍ기아자동차 그룹은 본연의 경영활동에 매진하면서도, 정몽구 회장의 진두지휘로 2012년 여수엑스포 박람회 유치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후보가 과거 현대가에 몸담았던 것으로 인해‘무슨 연관이 있나’ 하는 재계 안팎의 시선을 의식, 비정치적 행보를 보이는데 주력하고 있다.
김용철 전 그룹 법무팀장의 비자금관련 폭로 파문을 수습하느라 고심중인 삼성도 특정 대선 캠프와의 유착설 등이 나오지 않도록 임직원에 대한 입 단속, 행동 단속에 적극 나서고 있다.
LG는 정치권과는‘불가근 불가원(不可近 不可遠)’입장을 고수하면서 재계에선 비교적 구설수에 휘말리지 않은 그룹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룹 관계자는“정치권과 거리를 두려는 오너의 의지가 워낙 강해 정치권이나 정부에 대한 로비를 전담하는 조직도 없다”면서“정도경영에 매진하는 게 힘쓰고 있다”고 말했다.
SK는 최근‘가족 행복’을 슬로건으로 들고 나온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의 키워드가 그룹 캐치프레이즈와 갖다는 점에서, 최태원 회장이 이명박 후보와 고대 동창이라는 점에서 각 캠프와 연결 지으려는 일각의 움직임에 당혹감을 보이며 이를 일축하고 있다.
대선 후보와 직접 관련된 기업들은 대선 파도에 휩쓸리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의 사위인 조현범씨가 부사장으로 있는 한국타이어의 경우 대표적인‘이명박 주(株)’로 분류되고 있어 주목을 받고 있다.
한국타이어측은 이 후보와의 특수 관계인 점을 감안, 정치적인 오해를 받을 만한 일을 삼가고, 정상적인 경영활동을 전개하고 있다는 점을 알리는데 노력하고 있다.
유한킴벌리는 문국현 후보가 20년 넘게 회사에 몸담으면서 펼쳤던 경영활동이 그의 공약과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불필요한 오해를 살 수 있다며 조심하고 있다.
재계는 하지만 역대 대선 때와는 달리 비자금 부담이 거의 없다며 참여정부의 선거제도 개혁에 후한 점수를 주고 있다. 참여정부의 반재벌적인 행태와 정책에 대해 반감을 가져온 재계가 돈 안드는 선거 개혁을 한 것에 대해선 긍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는 셈이다.
모 그룹 재무팀 관계자는 “과거 대선 기간엔 계열사 재무팀을 동원해 비자금을 조성한 후 각 캠프별로 실탄을 보내느라 정신이 없었다”면서 “하지만 이번 대선에선 이 같은 실탄 요청이 없어졌고, 현금 뭉치를 세는 일도 없어졌다”고 달라진 대선 풍경을 전했다.
장학만 기자 local@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