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입가경이다. 전 BBK 대표 김경준(41ㆍ구속)씨의 부인 이보라(37)씨가 21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4건의 ‘주식거래 이면계약서’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계약서를 둘러싼 진위 공방은 한층 치열해질 전망이다.
그러나 이씨가 이면계약서의 표지와 서명란만 보여주고 내용을 공개하지 않은데다가 당초 기자회견에 나오기로 했던 김경준씨의 누나 에리카 김(43)씨도 모습을 보이지 않아 이들 남매와 가족들의 행보가 명쾌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 김경준측 "이면계약서 4건"… 진위공방 확전 불가피"한글 계약서에 BBK 100% 이명박 소유 적시"한나라 "주식거래 계약서만 존재할 뿐"
지금까지 이면계약서를 둘러싼 논쟁의 초점은 분량이 30페이지가 넘는다는 김경준씨 보유본과 18페이지 분량의 한나라당 보유본 중 어느 것이 진본이냐에 모아졌다. 그러나 이면계약서의 종류가 4건이나 되고, 사본이 모두 검찰에 제출됐다는 이씨의 기자회견 주장 내용이 나오면서 양측간 진위 공방의 확전이 불가피해졌다.
이씨가 보유하고 있다고 공개한 4건 중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한글 계약서다. 이씨는 바로 이 계약서에 ‘BBK가 100% 이 후보 소유’라는 사실이 적시돼 있다고 주장했다. 진위 여부에 따라 잠재적 파괴력이 가장 클 수도 있다는 얘기다.
나머지 3건의 영문 계약서는 EBK증권중개를 설립하는 과정에서 LKe뱅크, 이 후보, 김경준씨가 각각 EBK와 맺은 계약서라는 게 이씨의 주장이다. 정확한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관련 회사들과 이 후보간의 지분 관계가 기록돼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씨는 기자회견에서 “주주들의 이면계약을 통해 결론적으로 증권회사의 모든 주식을 이 후보의 LKe뱅크로 되돌리는 내용”이라고 주장했다. 3건의 계약서를 한꺼번에 살펴보면 이 후보가 관련 회사들을 모두 지배하고 있었다는 ‘큰 그림’이 나타난다는 의미다. 이 후보의 친필 서명이 적혀 있다고 이씨가 주장한 것도 바로 이 영문 계약서들이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은 “이면계약서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만큼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는 기존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
한나라당 클린정치위원회 고승덕 전략기획팀장은 이날 “이번 사건과 관련해 실제로 존재하는 계약서는 LKe뱅크와 AM파파스간의 주식거래 계약서 뿐이다”며 “‘이면(裏面) 계약서’는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으며 오직 ‘정면(正面) 계약서’만 있다”고 강조했다.
● 이명박 서명 위조 가능성 때문에 공개 유보했다는데…"서명만 가리고 공개하면 되지 않나" 지적
김경준씨 측이 당초 이날 공개하기로 했던 이면계약서의 원본을 끝내 내놓지 않은 것은 석연치 않은 대목이다. 김씨의 부인 이씨는 “이 후보의 서명이 공개될 경우 그가 위조된 서명을 검찰에 제출할 가능성이 있다”고 해명했지만 공개 유보 이유로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당장 “친필서명이 문제라면 그 부분을 가리고 내용만 공개하면 되지 않느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하다 못해 ‘BBK가 100% 이 후보 소유’라는 사실이 기록돼 있다는 한글 계약서의 해당 부분만이라도 공개했어야 했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특히 이 후보의 친필서명이 적힌 계약서 맨 뒤쪽은 이미 사진을 통해 공개된 상태라 ‘보안 유지’의 실효성도 떨어진다. 이 후보의 친필서명이 맞다면 김씨 측의 공개 여부와 관계없이 이 후보가 서명의 모양새를 모르고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한 마디로 공개를 하지 않음으로써 김씨 측이 챙길 수 있는 실익이 없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법조계에서는 ‘무기’를 먼저 내놓는데 대한 부담감 때문에 공개하지 못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한나라당이 18페이지 짜리 계약서를 공개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자신들이 먼저 이면계약서를 내놓을 경우 역이용될 가능성을 우려했다는 의미다. 물론 문서의 신뢰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공개를 못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 주인공 에리카 김, 왜 올케를 대신 내보냈나美 형사피고인 처지 '신뢰도' 감안한 듯
당초 이날 기자회견의 주인공은 에리카 김씨였다. 그러나, 예고했던 시간보다 두 시간 늦게 회견장에 모습을 드러낸 인물은 뜻밖에도 이씨였다.
에리카 김씨는 1994년부터 이 후보와 인연을 맺어온데다가 옵셔널벤처스 이사로 등재되는 등 이번 사건의 실체를 명백히 알고 있을 것으로 추정돼 온 인물이다. 이번 기자회견도 그 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던 에리카 김씨의 본격 등장이라는 점 때문에 비상한 관심을 모은 게 사실이다.
그가 기자회견장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은 것은 자신이 처한 입장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그는 허위 서류를 이용해 은행신용거래를 한 혐의 등으로 기소돼 미 연방법원의 재판을 받고 있는 형사 피고인이다. 이미 2건의 돈세탁과 2건의 허위 세금신고 혐의에 대해서는 본인이 유죄를 인정한 상태다.
옵셔널벤처스 주가조작 및 횡령 사건의 공범이라는 의혹 역시 부담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은 이날 “에리카 김씨는 동생 김씨와 옵셔널벤처스 횡령 사건을 공모한 만큼 동생이 기소될 경우 본인도 범죄인 송환 대상이 된다”고 주장했다. 결국 에리카 김씨는 자신에 쏠려 있는 각종 의혹들이 기자회견 내용 자체에 대한 신뢰도까지 함께 떨어뜨릴 수 있다는 점을 의식해 올케를 대신 내보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박진석기자 jseo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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