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영상저장장치(DVR) 제조업체인 아이디폰은 우리나라에서보다 미국에서 더 유명한 보안장비 전문업체다.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하지만 경호업체나, 보안회사, 경찰 관계자들에게는 잘 알려진 회사다.
매출 규모에서 아직 DVR 분야 국내 1위 자리에 오르진 못했지만 빠른 성장률과 수출 증가, 시장을 선도하는 신기술 연구개발 노력은 아이디폰의 미래를 한층 밝게 해주고 있다.
■ 직장 퇴출과 창업
외환위기의 칼바람이 한창이던 1998년 LG산전의 신용카드 조회기 사업부 팀장이던 엄현덕 사장은 그 해 하반기 사업부 전체가 구조조정 대상에 오르는 불운(?)을 맞았다. 당시 부장 5년차인 엄 사장은 같이 근무하던 개발담당 직원 4명과 함께 회사로부터 사업권을 인수 받아 이듬해인 99년 3월 아이디폰을 창업했다.
엄 사장은 사업 초기 신용카드 조회기 사업을 기반으로 회사를 꾸려갔다. 다행히 이듬해 벤처 열풍이 불면서 기관 투자가들로부터 25억원의 투자까지 받아 나름대로 자금 걱정 없이 회사를 운영했다.
설립 후 2,3년간은 관련 사업이 전성기를 맞으면서 매출도 급성장했다.
신용카드 조회기 생산에서도 1,2위를 다툴 정도였다. 그러나 경쟁업체들이 늘어 과당경쟁, 가격 덤핑 등의 출혈 경쟁이 나타나면서 잘 나갈 것 같던 신용카드조회기 사업도 곧 ‘레드오션’으로 전락했다. 가격 덤핑으로 제품 단가가 10년 전의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고, 매출에도 큰 타격을 입었다.
많은 투자비를 쏟아 부어 새 제품을 개발해 시장에 선보이면 개발비를 회수하기도 전에 또 다른 경쟁 제품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면서 경쟁을 위해 또 다시 연구개발비를 들여 새 제품을 내놓아야 하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엄 사장은 “사업 여건이 좋지 않아 투자자들에 대한 심적 부담도 컸다”고 털어 놓았다.
■ 새로운 시장에 눈을 뜨다
신용카드 조회기 사업에 대한 회의가 들기 시작하던 2001년 엄 사장은 미국의 한 지인으로부터 보안장비 제조 주문을 받으면서 신시장 개척의 물꼬를 트게 됐다. 일반인도 아닌 미국 경찰이 사용할 경찰 장비를 만들어 달라는 요청을 받은 것이다.
엄 사장은 바로 경찰이 범죄 용의자를 체포하는 과정의 대화 내용을 녹음할 수 있는 무선 마이크로폰 시스템 개발에 들어가 2002년부터 미국 경찰에 수출을 하기 시작했다.
이 무선 음성 녹음 장치는 2002년 한해 동안 100만 달러 이상 해외에서 팔리는 효자 상품이 됐고, 아이디폰은 그 해 100만불 수출탑을 수상했다.
엄 사장은 새 제품 개발에 착수해 2003년 음성뿐 아닌 영상까지 녹화가 가능한 경찰 차량용 DVR 운영 시스템을 개발, 2004년 6월부터 미 경찰 당국에 수출했다. 이 제품 역시 대박을 터트리며 2005년 무역의 날에 300만불 수출탑을 받는 쾌거를 이루는 데 한몫 했다.
아이디폰이 보안장비 시장에서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데에는 미국의 9ㆍ11 테러 사건도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엄 사장은 “9ㆍ11 사태 이후 보안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관련 장비 시장이 급성장했다”며 “일반 개인 수요도 늘어났지만 보안업체와 경찰, 관공서 등의 주문이 크게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DVR이 보통은 보안을 목적으로 사용되지만 최근 나오는 제품들은 초소형화 되어서 사이클, 래프팅 등 레포츠를 즐기는 동호회 회원들이 자신의 활동을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사용하는 등 시장이 넓어지는 추세”라며 “아직은 기관을 대상으로 하는 제품을 전문적으로 만들지만 앞으로는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DVR 시장이 형성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 일반인을 공략하라
전형적인 B2B(기업 대 기업) 사업을 해온 아이디폰은 지난해 초 시각장애인이 사용하는 지팡이에 전자태그무선인식(RFID) 기술을 접목한 길안내 시스템 ‘내비워크’(NAVIWALK)를 개발하며 B2C(기업 대 고객) 사업으로 영역을 확대했다.
내비워크는 유도 점자블록에 유비쿼터스 기반의 RFID를 매설해 놓고 그 위를 시각장애인이 전자지팡이로 접촉하면 현재 위치와 방향 등을 지팡이에 연결된 스피커를 통해 음성으로 안내해주는 첨단 시스템이다. 기술적으로는 상용화 단계에 와 있지만 실제 보도에 RFID를 매설해야 하는 등 지방자치단체의 협조가 필요해 실생활에 적용하기까지는 시일이 걸리 것으로 보인다.
엄 사장은 “이 기술이 상용화된다면 시각 장애인들의 생활이 한층 편하고 안전해질 것”이라며 “시각 장애인학교, 지하철역 등을 비롯해 장애인 복지가 잘돼 있는 미국 유럽 등 선진 국가를 대상으로 한 수출 전망이 밝다”고 말했다.
● 엄현덕 사장이 말하는 성공 비결/ "회사 핵심동력은 R&D 매출 10% 꾸준히 투자"
"늦어도 창업 10년째인 2009년에는 상장할 계획입니다."
아이디폰의 엄현덕(사진) 사장은 "최근 내수와 수출 실적 등을 감안할 때 올해에는 매출 100억원을 돌파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늦어도 회사 출범 10년째인 2009년에는 기업공개(IPO)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아이디폰이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국내ㆍ외에서 내로라 하는 보안장비 전문업체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적절한 시기에 단행한 사업 다각화와 기술개발 덕분이다. 아이디폰은 올해 매출 100억원을 달성한 뒤 내년에는 250억원으로 끌어 올린다는 단기 목표를 세우고 있다.
엄 사장은 "매출의 10%는 꾸준히 연구개발(R&D)에 투자해오고 있다"며 "20명의 작은 인력 중에 연구소 인력을 7명이나 배치할 정도로 R&D를 회사의 핵심 동력으로 삼고 투자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아이디폰이 보유한 수십여 건의 특허도 경쟁력이다. 엄 사장은 이전 LG산전 신용카드조회기 사업부에 근무할 당시에도 1년에 최대 8건의 특허를 받는 등 사내 발명왕으로 통할 정도로 아이디어가 넘쳤다. 아이디폰이 새로 출시할 데이터 소거 시스템(제품명: 디가우저)도 바로 엄 사장의 역발상이 반영된 제품이다.
엄 사장은 "보안장치라 하면 통상 기록을 보존하고 남기는 것으로 이해하지만 '디가우저'는 강력한 자기장을 이용해 데이터를 완벽하게 지우는, 180도 다른 개념의 보안 장치"라며 "국가정보원이나 미국의 중앙정보국(CIA), 연방수사국(FBI) 등 정보기관은 물론 각종 기관들이 폐기 처분해야 할 데이터를 완벽히 없애야 할 경우 유용한 장비"라고 설명했다.
엄 사장은 "기업 경영에서 시장 예측이 가장 어려운 부분"이라고 말한다.
그는 "DVR시장은 시장 자체는 크지만 마진폭은 그리 크지 않다"며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것이 관건인데, 경찰은 물론 군대에도 납품을 계획 중"이라고 밝혔다.
엄 사장은 "현재 내수와 수출 비중이 2대 8 정도로 수출 비중이 높은 편"이라며 "급성장하는 국내시장을 위한 제품 개발에도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업이 성공하려면 운(運)도 중요하지만, 정작 운이 왔을 때 기술이 없다면 사업은 성공하기 어렵다"며 "기술력을 갖추고 '때'를 기다린다는 마음으로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태훤기자 besa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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