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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제도를 바꾸는 '사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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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제도를 바꾸는 '사건'들

입력
2007.11.22 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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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1월 28일 대구에서 경북1지구 고교입시가 있었다. 지구별 공동출제 시험은 ①, ②, ③, ④ 중 선택하는 객관식. 그런데 주의 깊게 관찰하면 동그라미 속의 1, 2, 3, 4 숫자 가운데 3개는 30% 정도 기울어진 필기체로, 나머지 1개는 똑바른 인쇄체로 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당시는 등사기로 시험지를 인쇄했던 시절, 필경사가 일부 교사와 짜고 정답은 인쇄체로, 오답은 필기체로 해놓고 돈을 받고 정보를 팔았던 것이다. 5교시 동안 치른 180문제 가운데 120문제가 쉽게 구분할 수 있을 정도였다. '고교입시 정답암호 사건'이었다.

■사건을 사건화한 것은 학생들이었다. 1교시 시험이 끝난 뒤 휴식시간에 삼삼오오 모인 가운데 '이상한 인쇄'가 화제가 됐고, 2교시 3교시를 거치면서 심증은 굳어지고 소문은 확산됐다. 뚜렷한 물증(시험지)을 바탕으로 바로 다음 날 전모가 드러났다. 교사와 학부모 등 12명이 구속되고 공무원 15명이 직위해제됐다.

1지구에 한해 재시험이 치러졌다. 사임한 도교육감이 고향집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까지 있었다. 학생들의 소문이 휴식시간 난롯가에서 인터넷 상으로 변했을 뿐, '김포외고 시험문제 유출 사건'과 너무나 흡사해 보인다.

■1964년엔 '무즙 사건'이 있었다. 12월 7일 중학교 입시에 '엿기름 대신 넣어 엿을 만들 수 있는 것은?'이라는 문제가 나왔고, 출제위원회는 '①디아스타제'만을 정답으로 했으나 '②무즙'을 선택한 답안도 많았다.

학생들은 교과서에 '침과 무즙에 디아스타제가 들어 있다'는 대목을 들이댔고, 학부모들은 실제로 무즙으로 엿을 고아 학교 곳곳에 덕지덕지 붙였다.

학생들이 낸 소송에서 이듬해 3월 30일 서울고법 특별부는 ①, ②번 모두 정답이라며 ②번을 선택한 학생 가운데 그것 때문에 불합격된 39명 모두를 추가 합격시키라고 판결했다.

■이어 1966년 중학교 입시에선 '(조각에서)창칼을 바르게 쓰는 법'으로 역시 복수정답 문제가 불거져 학부모들이 해당학교 교장을 감금하는 등 폭동 수준까지 갔으나(창칼 파동), '교과서에 있는 방법이 가장 옳다'는 법원의 판결로 학생들은 구제되지 못했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은 중학교 입시를 폐지하고 고교 평준화를 확산하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일부 특목고의 시험문제 유출 사건을 보면서 "우리의 입시제도란 이렇게 어린 학생들의 한숨과 눈물을 빼먹고 자라는구나. 드디어 특목고 입시제도를 개선할 때가 됐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정병진 논설위원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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