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넷, 셋, 둘, 하나, 발사.”
카운트다운이 끝나자 곡사포에서 벼락치듯 터져 나오는 155㎜ 포탄 소리가 충남 태안반도 서쪽 끝자락의 국방과학연구소(ADD) 안흥시험장을 뒤흔들었다.
미국이 유사시에 대비해 남한에 비축해놓은 전쟁예비물자(WRSA) 인수를 위해 실시되고 있는 WRSA 탄약 성능 검증 작업이 20일 오후 3시 안흥시험장에서 언론에 처음 공개됐다.
미국은 1974년부터 99년까지 50만여톤의 WRSA를 한국에 도입했지만 정비와 관리에 막대한 비용이 든다는 이유로 보관을 2008년 말까지 종료키로 했다. 국방부는 탄약이 99.9%인 WRSA 중 155㎜ 탄 등 쓸 수 있는 물자가 많다고 보고 일부를 인수하기 위해 미국과 협상 중이다. WRSA탄 규모는 현재 남한이 보유한 전체 탄약의 60%나 돼 이 물자의 폐기나 반출에 따른 전력 공백도 메운다는 계산이다.
5월부터 시작된 협상에서 한미는 탄약의 성능 평가를 위해 ▦탄약상태 검사 ▦발사 시험 ▦변질이 우려되는 탄약에 대한 이화학적 분석인 저장분석 시험 등에 합의했다.
이날 시험에서는 WRSA탄 중 가장 많은 155㎜ 탄 중 무작위로 고른 60발이 발사됐다. 시험요원 10여명이 포신에 68년과 74년 각각 생산된 30발씩을 차례로 장착해 서해안으로 발사, 사거리와 탄두 속도, 탄두 사용 가능성 등을 확인하는 작업이다. 개당 50만원인 155㎜ 탄은 초당 560m의 속도로 최고도 760m의 포물선을 그리며 8.7㎞ 떨어진 서해바다의 탄착 지점에서 물보라를 일으켰다.
국방부는 육군용 탄약인 직사포ㆍ곡사포탄, 박격포탄, 지뢰 및 폭음탄, 연막탄 등을 무작위 표본 추출해 안흥을 비롯, 8개 시험장에서 내년 3월까지 발사시험할 계획이다. WRSA에 포함된 GBU-10, 12 등 유도탄은 국내 시험이 어려워 미국측이 제출한 시험 자료 검증으로 대체한다.
국방부 당국자는 “현재 대상 탄약의 21%를 시험했다”며 “내년 초 성능시험이 끝나면 본격적인 인수 규모와 가격 협상이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실무 협상은 내년 4월까지 마무리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등 시민단체들은 “대부분이 쓸모 없는 탄약에 불과한 WRSA탄을 한국이 천문학적인 혈세를 투입하여 인수하기 위한 협상으로, 폐탄약을 한국이 떠안음으로써 막대한 환경 피해와 주민 피해를 안기게 된다”며 한미 협상에 반대하고 있다.
김범수 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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