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권 글ㆍ정지윤 그림 / 창비발행ㆍ124쪽ㆍ9,000원
완고하고 병든 할머니, 할아버지와 손자 손녀들과의 관계는 동화에서 자주 다루어지는 소재다. 세대차이로 갈등을 겪지만 이를 극복하면서 가족간의 화해가 이뤄진다는 설정이 대부분.
그러나 이상권의 신작 <금순아 노올자> 는 조금 다르다. 처음부터 끝까지 치매에 걸린 할머니를 이해하는 인물은, 그리고 할머니가 유일하게 따르는 인물은 아들도 딸도 며느리도 아닌 초등학교 3학년 짜리 손녀다. 금순아>
나날이 심해지는 할머니의 치매 기운에 가족들은 폭발하기 일보 직전이다. 하지만 늘상 “금순아 노올자”라며 반말로 할머니를 부르는 막내손녀 연우는 그렇지 않다. 어려서부터 함께 퍼즐도 맞추고 블록도 쌓고 인형놀이도 했기에 친척들이 “엄마가 좋니? 아빠가 좋니?” 물으면 “할머니가 좋아!” 라는 대답이 튀어나올 정도다.
동화에서 두 사람의 친밀감을 키워주는 것은 손녀가 병든 할머니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다.
여시 같은 비둘기와 마당에 널어둔 고추를 지키기 위해 온갖 방도를 궁리하는 할머니의 힘겨루기가 소재인 연우의 이야기는 동화 속의 동화격. 바깥 이야기는 할머니의 현재를 그리고 있고, 안쪽의 이야기는 할머니의 과거를 그리고 있는데 두 이야기가 교차적으로 진행되면서 작품에 리듬감을 불어넣는다.
급기야 병원으로 실려가는 할머니. 자꾸자꾸 몸을 흔들어도 깨어나지 않아 아버지를 부르고 뛰쳐나가려는 찰나 “못가!”라며 할머니는 연우의 왼손을 꼭 잡는다.
가족 내에서 발언권이 가장 작고 주목을 적게 받지만, ‘동심’을 공유하고 있는 것은 이들 뿐이라는 작가의 따뜻한 시선이 느껴지는 동화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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