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크리스마스 날 세상을 떠난 ‘솔의 제왕’ 제임스 브라운의 선행이 그의 사후에도 계속된다.
73세를 일기로 타계했으나 유산상속 분쟁으로 눈을 감은 지 두 달 만에 안장되는 험한 꼴을 본 브라운이지만 그는 1991년부터 추수감사절 전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에서 칠면조 1,000여마리를 불우이웃에 선물하는 일을 해 왔다. 오거스타는 브라운이 힘든 어린 시절을 보내며 거리에서 춤과 노래로 돈을 번 곳이다. 나중에 리듬 앤 블루스의 선구자로 흑인대중음악에 대한 백인의 관심을 끌어내면서 인기를 얻은 그에겐 사실상의 고향이다.
하지만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뒤를 이은 볼썽사나운 재산 다툼 때문에 올해에도 그 같은 선행이 지속될 수 있을 지 불투명했다. 그런데 유족들이 어떻게 해서든 브라운의 ‘아름다운 유지’를 잇겠다고 한데다 생전에 그의 자선활동을 적극적으로 도운 래리 플라이어 목사, 인권 활동가 앨 샤프턴 등이 나서 예년의 이벤트를 계속하기로 했다. 이 가운데 오랫동안 브라운과 교류한 샤프턴은 오거스타와 뉴욕에서 거행된 두 차례의 장례식에 모두 참석해 추도사를 낭독할 정도로 절친한 사이였다.
샤프턴과 플라이어 목사 등은 브라운이 직접 참석하지 못하는 아쉬움 속에서도 지난 15년 동안 그런 것처럼 19일(현지시간) 칠면조 1,000여 마리를 오거스타의 여러 가정과 복지시설에 전달하기 시작했다. 유족은 브라운이 매년 크리스마스를 앞둔 12월20일 오거스타의 불우 아동에게 성탄 장난감 선물을 나눠 주던 행사도 계속하기로 했다.
딸 디애너 브라운 토마스는 “아버지가 남은 가족에게 바라는 것을 하기로 했다. 추수감사절과 크리스마스 선물 행사는 아버지가 생전에 가장 심혈을 기울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아버지가 당신 자식들이 이런 전통을 유지할 것이란 사실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으며 어떤 때는 우리 모두가 이 일을 잘해 나갈 걸 믿는다고 말했다”며 “그는 보통 아버지가 아니었다”고 기억했다. 유족들은 보다 많은 선물을 마련하기 위해 자신들이 준비한 자금 외에 기부금을 받고 있는데 벌써 수만 달러가 답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브라운은 가수이자 성공한 사업가로 ‘쇼비즈니스에서 가장 열심히 일하는 사람’으로 불렸으며 자수성가 흑인의 심벌이자 힙합, 댄스 뮤직에 지대한 영향을 준 뮤지션으로 꼽힌다. 여기에 더해 그는 나눔을 솔선해 실천하는 유명인으로서도 귀감이 되고 존경을 받았다.
1956년 발표한 싱글 <플리즈 플리즈> 를 시작으로 <아이 캔트 스탠드 마이셀프> <파파스 갓 어 브랜드 뉴 백> <이츠 어 맨스 월드> 등 주옥 같은 앨범을 연달아 냈으며 모두 밀리언 셀러를 기록했다. 86년에는 음악계에 끼친 공로로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기도 했다. 이츠> 파파스> 아이> 플리즈>
지난해 2월 내한공연을 성공리에 마친 브라운은 12월 24일 폐렴이 악화해 애틀랜타의 병원에 급히 입원했으나 결국 다음날인 25일 다시 못 오는 길을 떠나고 말았다.
한성숙 기자 hans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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