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산악계는 요즘 오은선(41), 고미영(40)이라는 걸출한 두 여성 산악인의 활약에 고무돼 있다. 불굴의 의지와 인내력이 필요한 8,000m급 14좌 완등을 위해 선의의 경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은선은 7월 최고의 난코스 K2(8,611m)에 오름으로써 8,000m 급 5개봉을 등정했다. 암벽등반 전문가인 고미영은 10월 시샤팡마(8,027m) 등정에 성공해 고산 등정 1년 만에 8,000m급 4개 봉을 올랐다. 2011년 14좌 완등을 목표로 한 두 여성 산악인의 모험과 도전을 들어보았다.
_엄홍길, 박영석에 비유하면서 두 사람의 레이스를 지켜보는 사람이 많습니다. 혹시 부담스럽지는 않습니까.
▦오은선= 고미영은 원래 스포츠 클라이머로 명성이 높았어요. 그런 그가 히말라야 등정에 뛰어든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외로운 도전에 함께 하는 사람이 생겨 반가웠습니다. 고생을 많이 할 것 같아 걱정도 했습니다. 그런데 본격적으로 고산 등정을 시작한 지 1년 남짓에 4개봉을 오르는 것을 보고 명성이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 스스로 분발해야겠다고 채찍질도 했고요. 우리 둘을 라이벌로만 보지는 말아주었으면 좋겠어요.
▦고미영= 오은선은 제가 따라가야 할 기준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편합니다. 오은선을 파키스탄에서 만난 적이 있는데 어렵게 원정대를 꾸려왔고 현지에서도 금전 문제로 힘들어 하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런데도 잘 해내는 것을 보면서 정말 의지가 강한 사람이라고 느꼈습니다.
_처음에 어떻게 산을 접했습니까.
▦오= 초등학교 5학년 때 북한산 인수봉을 처음 보았습니다. 봉우리 근처에서 사람이 움직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고 언젠가 저곳을 가보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대학에 가자마자 산악부에 가입했는데 그때는 바위 타는 게 무서워 짐이나 지키며 구경하는 것이 일이었습니다. 어느날 용기를 내 바위에 올랐는데 하늘을 날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고= 고교 졸업 후 공무원 생활을 했는데 야유회 때 가평 명지산을 갔습니다. 첫 산행 느낌이 너무 좋았어요. 그 뒤 한 3년 혼자 산에 다니다가 북한산을 알았습니다. 우연히 암벽등반 팀을 따라 바위를 올랐는데 굉장히 재미있었습니다. 1991년 코오롱등산학교에서 본격적으로 인공암벽등반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오= 91년 대학산악연맹이 여성 에베레스트 원정대를 모집했는데 그때 대원으로 선발됐습니다. 공무원이던 92년에는 새벽 3시까지 훈련하고 아침 일찍 출근하는 등 살인적인 스케줄을 견디고 드디어 이듬해 에베레스트에 갔습니다. 정상 등정의 영광은 원정대장인 지현옥 선배에게 돌아갔지만 언젠가 저도 정상에 서리라고 마음 먹었습니다. 지현옥 선배는 99년 안나푸르나에서 하산 도중 사망했는데 그가 살아있었다면 벌써 14좌를 했을 겁니다. 97년 영석이형(그는 박영석 대장을 이렇게 불렀다)이 이끄는 가셔브룸 원정대에 참가해 가셔브룸 2봉(8,035m)을 무산소 등정함으로써 8,000m 급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영석이형과 세 차례 8,000m 급에 도전했으나 모두 실패했고 7대륙 최고봉 등정으로 목표를 수정했습니다. 2002년 8월 유럽 최고봉인 엘브르즈(5,642m)를 시작으로 2년 4개월 만에 남극 최고봉 빈슨매시프(4,897m)에 오르며 7대륙 정상 완등을 마쳤습니다.
▦고= 암벽등반을 했더니 70㎏ 나가던 몸무게가 1년 만에 20㎏이나 줄었어요. 웨이트 트레이닝을 병행하자 하루가 다르게 몸이 좋아졌고 주위에서 대회에 나가라는 권유도 받았습니다. 94년 스포츠클라이밍 전국대회에서 2위를 하고 95년부터 9연승을 했습니다. 국내에 더 이상 경쟁자가 없다고 판단해 97년 아시아대회에 나갔는데 거기서도 1등을 했어요. 자신을 붙자 욕심을 좀 냈습니다. 직장을 그만두고 프랑스로 암벽등반 유학을 떠났습니다. 세계대회에서 상위권에 오르고 상금도 제법 챙겼어요. 2003년 아이스클라이밍 대회에 출전, 5위를 했고 지난 해에는 3주 동안 배운 스키실력으로 전국산악스키대회에 출전, 1등을 하기도 했습니다.
▦오= 저는 2004년 5월 아시아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에베레스트를 단독 등정하면서 14좌 완등을 목표로 세웠습니다. 지난해에는 시샤팡마를 무산소로 오르고 올해는 초오유, K2 등정에 성공했습니다.
▦고= 2005년 직장(코오롱등산학교) 창사 20주년을 기념해 강사들이 히말라야 등반에 나섰습니다. 입산료를 내지 않는(에베레스트 입산료는 팀당 7만 달러) 파키스탄의 드라피카(6,447m)를 올랐는데 하산 후 동료들이 저에게 체질이라며 고산 등정을 권했습니다. 그때 이왕이면 14좌를 목표로 하자고 다짐했습니다.
_지금까지는 10개봉을 오른 오스트리아의 겔린데 칼텐브루너가 14좌 완등에 가장 근접해있는데요. 두 분이 그를 따라잡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오= 저희는 둘 다 2011년 완등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지금으로서는 그를 따라잡는 게 어려워 보입니다. 하지만 요즘 저는 컨디션이 좋고, 칼텐브루너는 한해에 2개 이상 오르지 않기 때문에 역전 가능성은 늘 열려있습니다. 14좌 7대륙 등정을 기준으로 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요. 저는 이미 7대륙 최고봉 등정을 마쳤기 때문에 유리한 입장입니다.
▦고= 고산등정 대열에 늦게 합류했지만, 저도 현재 몸 상태가 좋고 재정 지원도 충분해 목표를 조금 앞당기겠다는 욕심이 생깁니다. 내년에 로체(8,516m), K2, 마나슬루(8,163m) 등 3, 4개를 목표로 하고 있는데 잘하면 예정보다 1년 앞선 2010년 완등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_특히 기억에 남는 산은 어디입니까.
▦오= 역시 K2입니다. 2001년 처음 접했는데, 군더더기 하나 없는 모습을 보노라니 왜 ‘절대군주’라고 부르는 지 알 수 있었습니다. 올 7월 회사를 그만두고 다시 도전해 오른 K2였기에 더욱 애착이 갑니다.
▦고= 올 여름 오른 브로드피크가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10년 넘게 클라이밍을 하면서 체력이 약하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는데 브로드피크에서는 하산 길에 처음으로 다리가 풀렸습니다. 내려오면서 주저앉기도 했어요. 산은 결코 쉽게 볼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_정상에서는 어떤 생각을 합니까.
▦오= 정상에 올라도 성취감을 만끽할 겨를이 없습니다. 긴장을 늦출 수 없지요.
▦고= 마찬가지입니다. 기쁨을 누릴 시간이 없어요. 위성전화로 먼저 보고를 합니다. 정상 등극은 산에서 완전히 내려온 후에 실감이 납니다.
_제2의 오은선, 고미영이 되려는 여성 산악인이 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한 말씀.
▦오= 기초를 다지는 게 중요합니다. 물론 그것이 산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겠지요. 미영씨가 지금처럼 고산등반을 잘하는 것도 기초가 좋기 때문이지요. 저 역시 꾸준히 기초를 다져왔기에, 기회가 왔을 때 해낼 수 있었습니다.
▦고= 즐기라고 말하고 싶어요. 저는 그랬어요. 클라이밍 경기 때도 다른 선수는 긴장하고 떨었지만, 저는 ‘앞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나를 응원한다. 내가 떨어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마인드 컨트롤을 했습니다. 고산등반이 힘들기는 하지만 즐거운 일을 생각하면서 산에 오르면 한결 힘이 납니다.
한창만기자 cm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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