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암의 발병 유형이 바뀌고 있다.
대한폐암학회가 ‘폐암 퇴치의 날’(17일)을 맞아 전국 89개 병원이 참여한 가운데 폐암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 미국 일본 등 선진국에서 많이 발병하는 선암(폐 자체에서 주로 발병하는 폐암) 발생률이 34.8%로 개발도상국에서 발생률이 높은 편평상피세포암(기도에서 주로 발병하는 폐암ㆍ32.1%)을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1997년 실태조사에서는 편평상피세포암 발생률이 44.7%로 선암(27.9%)보다 훨씬 높았다.
또한 이번 조사 결과, 여성 폐암환자 비율이 올해 24.2%로 1997년(21.0%)보다 3.2% 늘어났다. 또 여성 폐암 사망자 증가율이 1995~2005년 1.5배 늘어나 남성 폐암 사망 증가율 1.3배보다 높은 것으로 밝혀졌다. ‘폐암=남성 암’이라는 등식이 깨지게 될 전망이다.
■ ‘순한 담배’가 선암 원인?
흡연과 관련이 깊다고 여겨온 편평상피세포암과는 달리 그동안 선암은 여성과 비흡연자에게 많이 발병해 흡연과 관련이 없는 것으로 인식돼 왔다.
하지만 최근 선암도 흡연과 관계 있다는 연구논문이 계속 나오고 있다. 지난 9월 서울에서 열린 세계폐암학술대회에서도 ‘순한 담배’로 불리는 저타르ㆍ필터 담배가 선암을 유발할 수 있다는 연구논문이 발표됐다. 미국 터프츠 뉴잉글랜드병원 게리 스트라우스 박사는 이 대회에서 발표한 논문에서 “선암의 급증은 저타르ㆍ필터 담배의 생산 증가와 관련이 있다”고 주장했다.
1950년대 미국에서 1%도 되지 않았던 필터 담배가 1990년대 시장점유율 95%를 차지했으며, 필터 담배 유행이 시작된 시기와 선암 발생 증가 시기가 일치한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판매되는 담배도 주로 저타르ㆍ필터 담배다.
분당서울대병원 흉부외과 전상훈 교수는 “저타르ㆍ필터 담배=순한 담배라는 잘못된 인식 때문에 깊게 들이마시게 되면서 담배의 폐암 유발 물질들이 폐 깊숙이 유입돼 선암 유발을 촉진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선암의 발병 원인은 아직까지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삼성서울병원 영상의학과 이경수 교수는 “저타르ㆍ필터 담배가 선암을 유발한다는 논문도 많이 발표되지만 학문적으로 규명되지는 못한 상태”라고 말했다.
어떤 연구자는 선암 환자들이 공통적으로 운동량이 부족하다는 점을 들어 이를 발병 원인으로 꼽기도 한다. 중국에서는 튀김 요리를 많이 하는 여성에게 선암이 많이 발병해 이와 유관하다는 보고도 있다.
■ 사망률 높아 조기 발견이 관건
이번 실태조사 결과, 수술로 완치된 폐암 환자는 10명 중 3명 꼴에 불과했다. 또 4기 폐암 환자 사망률이 40.6%나 돼 폐암은 죽음의 암이라는 사실을 입증했다.
폐암은 다른 암과 달리 자각 증상이 거의 없고, 진행이 빠르다. 증상이 나타날 때는 이미 상당히 진행됐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폐암도 조기 발견한다면 완치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일반 건강검진으로는 조기 발견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가슴 X선 촬영을 보자. 가슴 X선 사진으로 폐암 여부를 확인하려면 암 덩어리가 지름 2~3㎝ 이상이어야 한다. 하지만 지름 1㎝짜리 암 덩어리 속에는 10억개도 넘는 암세포가 존재한다. 조기 발견에 한계가 있는 셈이다.
대한폐암학회는 저선량 컴퓨터단층촬영(CT)을 폐암 조기 발견을 위한 검진법으로 권고하고 있다. 또 폐암 고위험군(20년 이상 흡연자, 가족력, 특수환경 종사자)은 매년 1회, 여성ㆍ비흡연자는 폐암이 빈발하는 나이인 60세 이후 일반검진항목 외에 추가로 저선량 CT를 권하고 있다. 저선량 CT는 지름 3㎜ 정도의 초기 폐암 병소(病巢)까지 찾아낼 수 있어 조기 발견 가능성을 높인다.
폐암 예방을 위한 첫번째 생활수칙은 금연이다. 담배연기 속에는 암을 유발하는 화학물질이 24가지 이상이나 들어있다. 전체 암 사망자의 3분의 1이 흡연과 관련 있다. 특히 폐암은 사망 환자의 85%가 흡연과 관계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금연하는 사람은 담배를 계속 피우는 사람보다 10년 뒤에 폐암에 걸릴 확률이 절반으로 낮아지고, 15년 뒤에는 6분의 1 수준으로 떨어진다.
분당서울대병원 흉부외과 성숙환 교수는 “최근 비흡연 중년 여성에게도 폐암이 늘어난다는 점을 감안하면 여성도 생활습관을 적극 개선할 필요가 있다”며 “하루 30분 이상 규칙적으로 운동하면 암 뿐만 아니라 다른 병도 예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권대익기자 dkwon@hk.co.kr메디컬일러스트 박성남 medicalar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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