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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대畵 거목 '신사실파 60년展'… 전쟁, 예술, 우정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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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대畵 거목 '신사실파 60년展'… 전쟁, 예술, 우정의 기억

입력
2007.11.22 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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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은 시련으로 단련된다고들 한다. 전쟁통의 아수라 속에 도리어 난만하고 힘찬 붓질들. 삶은 곤궁한데 화폭은 찬란하여 공연히 숙연해지는 이 전시가 바로 그 말을 증거한다.

김환기, 유영국, 장욱진, 이중섭, 이규상, 백영수 등 이름만 들어도 귀가 쫑긋해지는 한국 근대미술의 거목들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신사실파 60주년 기념전’이 서울 부암동 환기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해방과 전쟁으로 어수선하던 당시의 풍경들이 흑백영화처럼 펼쳐지는 가운데 한국 추상미술의 주춧돌을 놓은 대가들의 작품이 보석처럼 반짝이는, 초겨울 선물 같은 전시다.

신사실파는 1947년 김환기를 중심으로 유영국, 이규상이 모여 결성한 우리나라 최초의 순수 조형미술 동인모임. 1948년 1회 동인전에 이어 이듬해 열린 2회 전시에 장욱진이 가세했고, 부산 피난시절인 1953년 국립박물관에서 열린 마지막 전시에 이중섭과 백영수가 참여하면서 6명으로 늘어났다.

이들은 표현의 양식적 수단과 목적은 ‘추상’이되 그 바탕이 되는 내용은 ‘사실’이라는 뜻에서 ‘신사실’이라는 개념을 주창하고, 구상의 틀에서 벗어나 포괄적 시각으로 대상의 본질을 파악하고 재구성하고자 노력했다.

작가별로 마련된 전시실에는 김환기 17점, 유영국 22점, 장욱진 20점, 이규상 5점, 이중섭 9점, 백영수 14점 등 총 97점의 작품이 걸렸다. 이 중 신사실파 전시에 소개됐던 작품은 김환기의 ‘달과 나무’, 유영국의 ‘직선이 있는 구도’, 장욱진의 ‘독’ 등 3점. 한 점도 허투루 만든 게 없어 3층까지 다 둘러보려면 어지간히 시간이 걸린다.

절제되고 세련된 조형언어로 한국적 서정주의를 추상 안에 담아낸 김환기의 작품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달과 산, 항아리 등이 그려진 일련의 풍경화와, 빨강과 파랑의 대비 속에 피난행렬의 설움을 담박하게 담아낸 ‘피난열차’(1951), 추상 진입의 문턱에서 만든 ‘론도’(1938) 등이 소개된다.

‘소’, ‘물고기와 아이들’, ‘부부’ 등 위작 파문으로 한동안 자취를 감춘 이중섭의 작품들도 오랜만에 바깥나들이를 하고, 산 그림으로 유명한 유영국의 50년대 작품들도 눈길을 끈다.

본관 전시장과 별관 2층의 자료실에 걸린 당시 홍보전단과 방명록, 사진 자료 등은 50년대의 아주 내밀한 화단 풍경을 엿보게 하는데, 그중 가슴 뭉클한 일화 하나. 부산 피난 시절, 조각가 윤효중을 찾아간 신사실파 동인들이 밥과 술을 얻어 먹고 여관방에 모여 자는데 이중섭이 훌쩍훌쩍 울기 시작했다.

김환기가 벌떡 일어나 발로 밀치며 “왜 밤마다 울어대? 재수없게스리”라고 면박을 주자 이중섭은 “너무 고마워서…”하며 또 훌쩍였다.

유일한 생존자인 백영수 화백은 “이중섭의 울음에 잠이 깨 있던 나도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며 괜히 서글퍼졌었다”고 회고했다. 전시는 내년 1월13일까지. (02)391-7701

박선영 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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