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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베오울프' 실사와 애니의 경계 허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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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베오울프' 실사와 애니의 경계 허물기

입력
2007.11.22 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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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테크놀로지’란 관점에서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의 <베오울프> (14일 개봉)는 관객들에게 묻는다. ‘실사와 애니메이션의 경계는 무엇인가?’

분명히 배우 앤서니 홉킨스, 존 말코비치, 안젤리나 졸리의 얼굴과 표정, 목소리인데 카메라가 잡아낸 자연 그대로가 아니다. 실제 배우의 움직임을 잡아내 컴퓨터그래픽화한 모션캡쳐와는 또 다르다. 이름도 생소하고 기술적으로 이해하기도 힘든 ‘퍼포먼스 캡쳐’에 안구의 움직임으로 유발된 생체전위의 변화라는 ‘EOG’를 결합했다는 <베오울프> .

분명 3년 전 저메키스가 내놓았던 <폴라 익스프레스> 와는 다르다. 영화에서 마녀와 인간의 이종교배로 괴물 그렌델이 태어났듯, 저메키스의 <베오울프> 도 이종(실사와 애니메이션)교배의 산물이다. 그런데 그것이 그렌델과는 정반대로 놀랍도록 새롭고 신기하다.

마치 가상공간에 들어간 인간들처럼, 캐릭터를 고스란히 가진 채 레이저 빛으로 만든 듯한 공간을 마치 비행기를 탄 것처럼 자유자재로 날아다니는 등장인물들. 비록 컴퓨터그래픽이지만 입체감과 리얼리티를 살리면서 현란하게 전개되는 액션, 특히 마지막 용과 베오울프(레이 윈스톤)의 웅장하고 역동적인 대결.

화살이 눈으로 날아오고, 뾰족한 철탑이 엉덩이를 찌를 것 같은 영상의 움직임. 그러면서도 그게 현실이 아니라 허상이라는 느낌을 주는 영화. <베오울프> 는 분명 ‘영화야말로 끝없는 테크놀로지의 도전장’임을 말해준다.

어찌 보면 <베오울프> 의 현명한 선택이기도 하다. 굳이 ‘영웅의 공식’을 들먹이지 않아도 뻔한 길을 가는 유럽 전설 속 인물들. 그래서 실사로 만들면 너무 단조롭고, 애니메이션으로 만들면 현실감이 없어져 끝까지 눈길이 가지 않는 그들을 <베오올프> 는 신화의 속성에 맞게 가상공간 속의 실제적 인물로 도전했다.

처음에는 좀 멋쩍다. 유치해 보인다. 3차원 입체영상이랍시고 커다란 안경을 쓰고 난쟁이처럼 줄어든 배우들을 보는 것이나 비누방울처럼 느껴지는 소품들이. 그러나 “참 희한하게도 만들었네” “저거 존 말코비치 아니야. 진짜야, 그래픽이야”하는 짧은 호기심과 외도도 잠시. <베오올프> 는 판타지 세계에서 펼쳐지는 영웅의 용기와 운명, 신화의 원시에 관객들을 빠뜨린다.

이전 크리스토퍼 램버트 주연의 <전사 베오울프> 와 스툴라 구나르손 감독의 <베오울프와 그렌델> 과는 다르다. <베오울프> 는 괜히 의미를 과장하려 변주를 하지 않았다.

8세기에 쓰여졌다는 앵글로 색슨족의 서사시를 충실하게 따라가 전사 베오올프가 북유럽의 흐로스가(앤서니 홉킨스)왕국을 구하기 위해 물의 마녀(안젤리나 졸리)의 아들인 괴물 그렌델과 싸우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다만 <베오울프> 는 이 특별할 것 없는 이야기로 영웅의 노래만 부르지 않고 인간의 모습을 집어넣었다. 흐로스가 왕에 이어 베오울프마저 마녀의 유혹에 넘어가 자식을 죽여야 하는 숙명의 ‘아버지의 죄’를 이야기하고, 그들의 허무와 탄식을 통해 영웅보다 인간 삶의 가치를 강조하고, 그렌델의 울부짖음을 통해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는 ‘괴물’ 인간을 냉소한다. 그래서 결국 세 번 놀라게 되는 <베오울프> . 보지도 않고 섣불리 어린이용 오락물로 치부하지 말기를.

이대현 기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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