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 자금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며 국내 금융시장에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이 14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 회관에서 예정에 없던 기자 간담회를 열었다.
그는 "연말께 해외 출장을 나가면 당분간 얘기할 기회가 없을 것 같아서"라고 배경을 설명했지만, 시장은 요즘 '너무 잘 나가서' 사면초가에 놓이게 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고육책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실제 미래에셋은 최근 개설하는 펀드마다 수 조원의 자금이 몰리면서 대형 제조업체들의 주가를 좌지우지 할 정도의 '큰손'이 됐다. 그만큼 금융계 내부에선 '증시 권력'에 대한 견제와 시기의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박 회장 개인적으론 국민연금 투자행태에 대한 공개 비판과 주우식 삼성전자 부사장의 면담 요청 거부로 구설수에 올라있다. 박 회장은 이런 문제들에 대해 2시간 여에 걸쳐 소신을 밝혔다.
박 회장은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펀드산업에 대해 얘기하고 싶다"며 운을 뗐다. 그는 일단 미래에셋의 독주와 인사이트 펀드의 쏠림 현상에 대해 시야를 세계로 넓혀 볼 것을 주문했다.
그는 "미래에셋자산운용의 비중이 국내에선 30%를 넘나들지만 세계에서는 0.2%밖에 안 된다"며 "우리나라가 세계 10위 경제규모를 가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정말 초라하기 짝이 없는 수준"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인사이트 펀드에 대해서도 "단기간에 4조원의 돈이 몰리면서 지나친 쏠림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지만, 해외에는 운용자산이 30조~40조원에 달하는 매머드급 펀드들이 상당수 있다"며 "해외에서 쟁쟁한 운용사들과 경쟁하려면 일정 규모를 갖출 필요가 있다"고 반박했다.
또 속칭 '몰빵 펀드'라는 비판에 대해서도 "몰빵은 한 국가 내지 한 종목에 올인 하는 것"이라며 "인사이트 펀드의 경우 이론적으론 주식투자 비중이 '0'이 될 수도 있지만, 투자국가와 종목을 다양화하는 게 원칙이기 때문에 '몰빵'이라는 표현은 적절치 않다"고 강조했다.
그는 "중국이나 러시아 등이 막대한 자금을 바탕으로 적극적인 해외투자에 나서기 전에 해외 시장을 선점할 필요가 있다"며 "이런 취지에서 인사이트 펀드를 기획했고, 미래에셋을 통해 해외자산 비중이 늘고 있는 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최근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로 요동치고 있는 세계 증시에 대해 변함없는 신뢰를 보였다. 그는 "당분간 고통스럽겠지만, 차라리 위험이 노출된 것이 다행"이라며 "세계 경제가 유례없는 확장 국면에 서 있는 만큼 건강한 조정을 거쳐 재상승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특히 세계 경제의 중심축이 선진국에서 신흥시장으로 이동하고 있는 흐름을 놓치지 말 것을 주문했다. 그는 "글로벌 시장에서 중국의 GDP 비중이 6.49%인데 반해 대표적 세계증시 지표인 MSCI 월드인덱스 비중은 1.69%밖에 안 되는 등 신흥시장이 평가절하 받고 있다"며 "세계 유수의 자산운용사가 신흥시장 리스크를 얘기하지만 정작 지뢰밭은 선진국"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그 근거로 ▦최근 서브프라임 모기지 쇼크로 막대한 손실을 낸 대부분의 기업이 선진국 기업이며 ▦대표적 신흥시장으로 불리는 홍콩 H증시의 PER(수치가 낮을수록 저평가)가 25배로 선진국 증시인 미국 낙스닥(30배)보다 낮다는 점을 들었다.
박 회장은 "인사이트 펀드 운용도 초기에는 안정성을 중시하겠지만, 수익률이 일정 수준 이상 되면 미래 성장성이 높은 신흥시장에 적극 투자할 것"이라며 "현재 국내 주식에 10% 정도 투자했다"고 밝혔다.
박 회장은 펀드 투자자들에게 당부의 말도 잊지 않았다. "펀드도 마이너스가 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미래에셋 포트폴리오를 보고 투자하는 것이야말로 묻지마 투자이다. 그런 점에서 매달 투자지분 변동률을 공시하는 제도도 손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박 회장은 최근 국민연금에 대한 공개 비판과 주우식 삼성전자 부사장 면담 거부를 둘러싼 구설수에 대해서도 "오해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미래에셋증권은 최근 국민연금이 자금운용 증권사를 선정할 때 기준으로 삼는 '거래 증권사 4분기 평가'에서 꼴찌를 기록했다. 지난 6분기 연속 최고 등급(S)에 속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몰락'이나 다름없다.
증시에선 박 회장이 9월 한국공학한림원 주최 CEO포럼에서 "국민연금은 지난 6년간 채권만 사들여 물가 상승률만큼의 투자성과도 내지 못했다"고 내뱉은 게 '화근'이 된 것으로 보고 있다.
박 회장은 이에 대해 "국민연금이 좀 더 적극적으로 투자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의 표현이었다"면서 "지금은 과거에 비해 많이 변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고, 이번에 성적이 나쁜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며 즉답을 피했다.
또 삼성전자 부사장의 면담 요청을 거부한 것에 대해서도 "거부라기보다는 구체적인 종목에 대해선 실무진에게 오히려 물어 볼 정도로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며 "커피 한잔 나누는 수준이었다면 흔쾌히 응했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안형영 기자 promethe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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