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침반을 잃은 채 전전긍긍하던 국세청이 오랜만에 한숨 돌렸다. 지난 일주일동안 국세청은 전군표 전 청장의 구속에 따른 국민적 불신 속에, 차기 청장 '외부 수혈'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흘러나오면서 설립 이래 최대 시련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러나 14일 국세청내 2인자 서열인 한상률 차장이 17대 청장 후보자로 내정됐다는 소식이 청와대로부터 전해지자 모처럼 안도하는 표정이었다.
한 내정자는 이날 "모든 일에 최대한 낮은 자세로 임하길 원하고 납세자를 섬기는 마음으로 몸을 낮춰 국세청 혁신을 위해 온 힘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연거푸 고개를 숙였던 대국민사과(8일) 때처럼 "국궁진력(鞠躬盡力ㆍ섬기는 마음으로 몸을 낮춰 힘을 다함)의 자세로 국세행정을 집행하겠다"는 의지도 재차 확인했다.
그의 소감은 국세청 쇄신과 혁신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자기반성의 표현이다. 청와대가 외부인사 영입이라는 충격요법을 쓰는 대신 조직 안정과 현안 처리에 중점을 둔 내부인사 승진을 택한 만큼 한 내정자의 어깨는 무거울 수밖에 없다.
때문에 한 내정자는 '선(先)안정, 후(後)혁신'의 전략을 쓸 것으로 보인다. 먼저 현직 청장의 구속과 뇌물상납 관행 등으로 땅에 떨어진 국민신뢰를 회복한 뒤 흐트러진 조직을 추스려야만 한다.
특히 코앞으로 다가온 종합부동산세 신고납부의 원만한 마무리는 중대 당면 과제다. 워낙 인화(引火)성 강한 예민한 세금인데다 올해는 납세자와 세액이 작년보다 크게 늘어난 탓에, 대선정국과 맞물려 적지 않은 조세저항이 예상된다.
충남 태안 출신으로 서울대 농업교육학과를 나온 한 내정자(행시 21회)는 국세청 최정예 코스인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장과 본청 조사국장을 거친 '조사통'이며, 이후 서울지방국세청장, 국세청 차장으로 승승장구했다.
99년엔 세정개혁기획단 총괄팀장으로 세정혁신 실무를 도맡아 처리해 기획력도 뛰어나다는 후문이다. 한 내정자는 인사청문회 절차를 거쳐 이르면 이달 하순, 늦어도 다음달 초순에는 청장에 정식 취임할 전망이다.
한가지 걸리는 대목은 현 정부 임기가 이제 3개월여 밖에 남지 않았다는 점. 같은 인사청문회 대상이지만 검찰총장이나 감사원장과는 달리 국세청장은 임기직이 아니다. 그런 만큼 차기정부로서도 국세청장에 대해선 유임이냐 교체냐에 부담이 없다.
만약 차기정부에서 한 내정자가 '3개월짜리 청장'으로 끝나 수뇌부 연쇄교체가 일어난다면, 충격에서 겨우 벗어나 안정을 찾아가고 있는 국세청 조직은 또 한번 흔들릴 공산이 크다. 국세청 안팎에서 "3개월간 대행체제로 가고 청장 임명은 차기정부에 맡기는 게 낫다"는 얘기가 계속 나온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고찬유 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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