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의 책에도 인권이 있을 것입니다. 귀중한 정신의 창작인 책을 저 어두운 창고의 구석에 유폐시켜 둘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해방시켜 주어야 합니다. 본인은 <해방전후사의 인식> 제 1권을 기획한 출판인으로서 어두운 창고 어딘가에 유폐되어 있을 그 책들을 생각하면 늘 가슴이 답답합니다. 한 권의 책은 살아 있는 정신과 지성의 생명체입니다.” 해방전후사의>
2004년 5월 한 출판사 대표가 당시 이창동 문화관광부 장관에게 보낸 편지가 화제가 됐다. 1979년 10ㆍ26사건 이후 판매금지 조치로 문화공보부에 압수된 <해방전후사의 인식> 제 1권 500권을 돌려 달라는 김언호 한길사 대표의 간곡한 호소를 담은 편지였다. 이 책은 1980년 ‘서울의 봄’ 당시 계엄사령부의 검열을 받아 출간이 다시 허용됐지만 김 대표는 압수된 500권에 일종의 생명력을 부여한 것이다. 해방전후사의>
1979년 10월 15일 발행된 1권을 시작으로 10년 간 송건호, 진덕규, 백기완 등 60여명의 필진이 참여, 전 6권으로 출판된 <해방전후사의 인식> 의 지나온 길을 살펴보면 이 같은 책의 의인화도 무리는 아니다. 해방전후사의>
해방 전후는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결정적이고 중요한 시기이면서도 1980년대까지도 제대로 논의되지 못했다. 더욱이 <해방전후사의 인식> 이 탄생한 1970년대 말은 민족적 상황과 정치현실에 대해 문제의식만 가져도 수난을 당하던 때여서 일제로부터 벗어난 1945년 전후의 역사를 민족사관에 입각해 기록한 <해방전후사의 인식> 은 금기를 깬 파격적인 시도였다. 자연히 책은 발간 직후부터 젊은 지식인과 학생 사이에 일명 ‘해전사’로 불리며 회자됐다. 해방전후사의> 해방전후사의>
격동하는 역사과정에서 태어나 수난 받고 또 다시 태어나는 모습이 해방 전후 민족의 역사와 꼭 닮아 있기에 책의 ‘인권’을 주장하는 것도 엉뚱한 소리만은 아닌 셈이다.
책은 논문집 성격을 띠고 있다. 해방을 전후한 우리 민족사의 이해에 개괄적인 해답을 제시하고자 한 1권은 5개의 장으로 나누어 총 12편의 논문을 담았다.
기본적으로 저자들은 8ㆍ15를 단순한 해방의 의미로 보기를 거부한다. 그들은 8ㆍ15가 민중이 주체가 될 수 있는 해방의 기회였던 것은 분명하나 민족 지도부의 역량 부족으로 미군정 하에 들어가는 것을 피하지 못했다고 보았다. 미군정에 대한 시각도 <해방전후사의 인식> 은 이전의 여러 연구와 다른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 책에 따르면 미국은 해방군으로서의 역할보다는 이데올로기 이해관계 때문에 한국 분단을 묵인한 분단의 책임 당사자 성향이 강하다. 해방전후사의>
또한 미군정의 몰이해로 일제 잔존 세력이 재등장해 친일 청산이라는 식민역사의 정리 작업이 불가능해졌다는 게 이 책의 지적이다. 저자들은 또 독립의 주체 세력으로 대표되는 김구, 이승만, 여운형 등 당시 정치지도자들의 사상과 행동을 자세히 다루고 있는데 당연하게 여겼던 ‘김구=독립운동가’, ‘여운형=공산주의자’ 식의 단순 논리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어 학생과 젊은 지식인에게 충격을 안겨 주었다.
2권이 나온 것은 1권 발매 후 만 6년 만이었다. 2권은 책이 시대의 소산이자 사회운동 속에서 재탄생하는 산물임을 입증한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를 더한다.
대학시절 <해방전후사의 인식> 1권을 읽고 공부한 몇몇 젊은 지식인들의 논문이 2권에 실림으로써 그들이 독자에서 필자로 거듭났기 때문이다. ‘8ㆍ15 직후 정치지도자들의 노선비교(김광식)’, ‘건국준비위원회의 조직과 활동(홍인숙)’, ‘미군정의 교육정책(이광호)’ 등이 이에 해당한다. 해방전후사의>
<해방전후사의 인식> 발간 이후 한국 현대사에 대해 젊은이들이 폭발적인 관심을 보이자 정치권이 견제를 하고 나섰다. 1985년 11월 하순, 정부와 민정당은 격화되는 학원사태의 발생이 8ㆍ15 이후의 현대사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에 원인이 있다고 의견을 모았다. 해방전후사의>
당시 민정당 노태우 대표위원은 “일부 대학생들이 8ㆍ15 이후의 현대사를 독재ㆍ부정선거ㆍ장기집권 등 부정적인 시각으로만 보고 기성세대를 불신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하고 “역사가 야사ㆍ비사ㆍ소문에 의해 오염되고 흥미 위주로 왜곡되는 것도 사회혼란의 근본요인이 되고 있으니 현대사를 시대별ㆍ정권별로 재정립하는 일이 추진돼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 와중에도 <해방전후사의 인식> 은 1987년에는 3권이, 1989년에 4~6권이 출간됐다. 우리 현대사가 혁명적으로 격동하던 70, 80년대 10년을 <해방전후사의 인식> 이 젊은 지성인들과 함께 한 것이다. 해방전후사의> 해방전후사의>
<해방전후사의 인식> 은 사회과학 서적으로서는 이례적으로 1권의 경우 약 40만 권이 팔려 나갔다. 출판 기획자와 필자들의 의지와 이론을 넘어서 하나의 사회운동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해방전후사의>
정치평론가 고성국씨는 “<해방전후瑛?인식> 은 냉전 시대에 잃어버린 반쪽의 역사를 온전하게 복원하기 위해 굉장한 위험 부담을 안고 서술된 책”이라면서 “정규 교과과정에서 전혀 배우지 못한 역사가 서술돼 있어 대학생이었던 나를 비롯해 당시 젊은이들이 큰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해방전후瑛?인식>
그는 또 “이 같은 시도가 있어 후학들이 자유로운 환경에서 균형잡힌 시각으로 학문의 발전을 이룰 수 있는 토대를 마련됐다”면서 “한국 지성사에 있어 실천적 의미를 띠는 최고의 학문적 성과를 올린 책”이라고 강조했다.
■ 송건호·백기완·강만길·김윤식…역사학자·언론인 등 59명 공동집필
직접 목차를 짜는데 관여한 제 1권의 대표 필자 고 송건호씨는 서울대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조선일보 한국일보 경향신문 논설위원, 동아일보 편집국장 및 논설위원, 한겨레신문 초대사장을 지낸 한국의 대표 언론인이다.
그는 2001년 별세했으나 2002년부터 그의 기자정신을 기린 송건호 언론상이 제정돼 매년 시상식이 열리고 있다. 김학준 동아일보 사장도 제 1권의 주요 필자 중 한 사람이다.
김 사장은 서울대와 미국 켄트주립대 정치학석사, 피츠버그대 대학원 정치학 박사과정을 마쳤으며 서울대 교수, 인천대 총장, 한국정치학회장 등을 지냈다.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은 백범사상연구소 창립자로, 김구의 사상과 행동을 분석한 그의 논문이 제 1권에 실렸다.
지난 봄까지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한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는 제 2권의 필자로 참여했다. 고려대 사학과를 졸업했으며 상지대 총장을 지냈다.
2~5권 필진 목록에 이름을 남긴 고 김남식씨는 북한연구가로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통일부, 국제문제조사연구소 등에서 현대사와 통일 관련 연구에 한평생을 바쳤으며 2005년 별세했다. 문학평론가 김윤식 명지대 석좌교수는 제 2권에 지식인 작가의 문제점을 중심으로 해방전후 문학을 분석한 논문을 실었다.
그는 100여종의 저서를 펴내 문학예술의 광범위한 영역에서 거대한 학문적, 문학적 성과를 이룬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들을 비롯해 60여명의 학자들이 <해방전후사의 인식> 집필에 동참했다. 해방전후사의>
■ 김언호 한길사 대표 인터뷰
"1980년대는 책을 만들어 읽고 그 가르침에 따라 실천한 '책의 시대'였습니다."
김언호(62) 한길사 대표는 "<해방전후사의 인식> 을 통해 한국사회는 변화하기 시작했다"면서 기획자로서의 소회를 밝혔다. 책의 출발은 그의 호기심이었다. 도대체 남북 분단의 원인은 무엇일까. 과연 외세에 의해서만 분단이 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 해방전후사의>
"당시만 해도 해방 전후사를 제대로 논의하는 것이 아직 쉬운 일이 아니라는 의견이 대세였지요. 하지만 으레 해방만을 떠올렸던 8.15 전후의 역사를 해명해야만 우리 자신과 관련된 사회과학이 비로소 맥락을 잡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어요."
김 대표는 '독자로서 나부터 읽고 싶은 책을 만들자' 마음먹었고 이렇게 해서 젊은 학자들의 논문을 모은 <해방전후사의 인식> 이 탄생했다. 그는 일종의 논문집인 이 책이 열흘 만에 4,500부나 팔려나가는 것을 보면서 '책은 독자와 함께 만드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했다. 해방전후사의>
"한 권의 책은 어느 날 하루아침에 창출되는 게 아닙니다. 책이 등장하게 되는 역사적 배경 또는 사회적 정서와 사상이 엄연히 존재하죠. 결국 <해방전후사의 인식> 은 1980년대를 살아 온 우리 모두의 공동작업이자 성과입니다." 해방전후사의>
역사와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기획된 <해방전후사의 인식> 은 여러 사회과학 서적의 모티프가 되는 등 역사인식운동에 불을 지폈지만 이 때문에 수난을 겪기도 했다. 지난해 초에는 <해방전후사의 인식> 의 편향성을 문제 삼은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 이 출간되기도 했다. 해방> 해방전후사의> 해방전후사의>
"<해방전후사의 인식> 이 좌파 민족주의자들의 주장이라는 지적에는 동의할 수가 없습니다. 책에는 자유 민주주의 학자의 글도 있고 민족적 진보주의 학자의 글도 있습니다. 학문과 지성의 세계라면 보수도, 진보도 존중돼야지요. 생각의 차이를 존중하는 것이야말로 아름다운 일 아닙니까." 해방전후사의>
사회 변화에 따라 시대정신을 이야기하는 매체도 달라져 영상과 인터넷이 정보를 얻는 중요한 미디어가 됐지만 여전히 책은 지식과 사상을 확보하는 가장 중요한 매체라는 게 그의 말이다.
"사람은 책을 만들지만 책은 또 사람을 만들지요. <해방전후사의 인식> 은 한국인에게 새로운 민족의식과 자주의식을 심어준 책입니다. 바로 그런 책이 우리 시대의 명저가 아닐까요." 해방전후사의>
김소연 기자 jollylife@hk.co.kr.사진 신상순기자 sssh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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