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니아 출신의 연출가를 꿈꾸던 소녀는 18세 되던 해 일어난 전쟁(보스니아 내전)으로 모든 것을 잃었다. 대가족은 세계 각지로 뿔뿔이 흩어졌고 난민 생활은 8년이나 지속됐다. 2000년 힘겹게 오스트리아 시민권을 획득하고 그곳에 정착한 소녀는 전쟁의 본질, 특히 전쟁과 여성의 운명에 대해 연구하고 알리는 일에 인생을 걸기로 결심한다.
그리스 비극을 일제 시대 위안부 이야기와 접목한 연극 <트로이의 여인들> 은 오스트리아 연출가 아이다 카릭(33)의 성장 배경과 떼놓고 생각할 수 없는 작품이다. 트로이의>
14일부터 12월 2일까지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서 공연되는 <트로이의 여인들> 은 ‘아시아 스토리(An Asian Story)’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카릭은 고대 그리스의 3대 비극작가 중 한 명인 유리피데스의 <트로이의 여인들> 에 위안부들의 증언을 교차시킨 이 작품을 5월 비엔나 페스티벌 개막작으로 선보였고 평단과 관객의 호평을 이끌어 냈다. 트로이의> 트로이의>
5명의 한국 여배우가 출연하고 극의 진행상황을 설명하는 코러스의 역할을 판소리로 대신한 이 독특한 연극은 지난달에는 미국 뉴저지에서 공연돼 좋은 반응을 얻기도 했다.
“원래는 보스니아 내전의 성폭행 피해 여성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너무 민감한 소재라 비슷한 사례를 찾던 중 한국의 위안부 문제에 대해 알게 됐어요. 전쟁으로 여성이 겪는 희생과 고통은 시공간을 초월해 어느 곳에서나 일어나는 문제임을 깨닫고 이 작품을 구상하게 됐습니다.”
자료 수집 과정에서 지난해 위안부 피해자 공동체인 ‘나눔의 집’을 직접 방문하기도 한 그는 “전혀 관련 없는 유럽인이 난데없이 위안부 문제를 연극화한다고 생각하지 말아달라”고 했다.
카릭은 연극의 사회성을 중시한다. “제게 연극은 항상 필요와 열정의 문제였어요. 연극 연출은 정말 힘들기 때문에 꼭 전하려는 메시지가 없으면 섣불리 나서지 않습니다. 그래서 남녀 간의 사랑이야기는 제 관심 밖이지요.”
그가 극의 형식을 만들 때 텍스트보다 이미지를 중시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트로이의 여인들> 만 해도 일일이 대사로 설명하는 대신 신체와 음악, 조명을 적극 활용해 관객이 ‘느끼는 연극’으로 꾸미고자 했다. “위안부 문제는 정작 한국인들도 자세히 아는 사람이 드문 것 같아요. 이 연극을 계기로 좀 더 많은 이들이 전쟁으로 여성이 얼마나 무자비한 폭력에 시달리고 있는지 알게 되기를 바랍니다.” 트로이의>
김소연기자 jollylife@hk.co.kr사진 배우한기자 bwh3140@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