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이 필요 없다. 파일 하나면 된다. 아무리 많이 찍어도 필름 값 걱정을 하거나, 극장상영을 위해 한 벌에 200만원이나 하는 프린트비를 쓰지 않아도 된다.
당연히 이익이다. 지난해 영화진흥위원회가 내놓은 연구보고서 ‘디지털시네마 도입의 경제적 파급효과’에 따르면 연간 243억여원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그 돈으로 영화를 더 만들 수 있으니 영화산업 성장효과는 1,000억원이 넘는다. 영사기를 새로 사야 하는 극장 입장에서만 보면 당장 129억원 손해지만, 이 역시 첫해만 지나면 매년 32억원씩 이익이 된다는 것이다.
여기에 필름의 반복상영으로 영상과 사운드가 나빠지는 걱정도 없다. 사정이 이런데 ‘필름 없는 영화’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이런 효율성, 경제성에도 조건이 있다. 촬영, 편집, 배급, 상영의 영화 전과정에서 디지털화가 이뤄져야 한다. 아무리 디지털로 제작하면 뭘 하나, 상영할 곳이 없어 필름으로 다시 바꾸는 작업(키네코)을 해야 한다면.
그런데 그런 걱정도 사라지고 있다. 2001년만 하더라도 전세계 41개에 불과하던 디지털 스크린이 2005년 849개로 급증했으며 미국은 올해 말까지 4,000개, 유럽도 2012년이면 7,000개까지 늘어난다. 중국도 2010년까지 2,500개까지 늘린다는 목표다.
우리도 예외는 아니다. 그 선봉에 양대 극장메이저인 CGV와 롯데시네마가 섰다. 최근 ㈜디시네마 코리아 설립계약을 맺은 이들은 5월 현재 전국 107개에 불과한 디지털스크린을 2,3년 이내 1,000개까지 늘린다는 계획이다.
자사 멀티플렉스 뿐만 아니라, 다른 (중소)극장에도 지원(영사기 구입비용의 70%인 6,000~7,000만원)하겠다는 것이다. 대신 미국이나 유럽처럼 기존 프린트 비용의 절반 정도로 가상프린트비용(VPF)을 받고, 그나마 10년 뒤에는 영화관에 영사기 소유권을 완전히 넘겨준다.
남의 극장에까지 발벗고 나서는 이유를 이들은 이렇게 설명한다. “내년이면 디지털 영화 상영이 전체 절반을 넘는다. 때문에 극장도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다. 다만 초기 비용부담 때문에 망설이고 있다. 그 부담을 덜어주고, 영화제작과 배급 상영의 시간과 비용을 절약하는 윈-윈 게임이기 때문이다. 극장들이 각자 구입하기 보다는 한 창구를 통해 일괄 대량구매하면 가격도 더 저렴하다. ”
다 맞는 말이다. 뜻도 좋다. 그런데 영화계 모두가 흔쾌히 박수를 치지 않는다. 그들의 가장 큰 걱정은 독과점이다. 가뜩이나 국내 스크린의 절반 가까이를 갖고 있는 두 회사가 디지털영사기 보급을 통해 중소극장의 배급까지 장악하려 한다는 것이다.
제작사 역시 이들의 네트워크를 이용하지 않고는 영화를 극장에 공급하기 어려워지고, VPF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배급기간이 일주일에서 하루로 단축되면서 지금은 적어도 일주일은 버티던 영화들이 하루 만에 내려지는, 그래서 흥행작 위주의 상영이 더욱 거세지고 다양성은 점점 줄어들 위험성도 경고한다.
그렇다고 한국영화만 시대와 기술의 흐름을 외면할 수도 없다. 또 한번 속더라도 일단 윈-윈을 위해 총대를 매겠다는 두 거인의 진정성을 기대할 수 밖에.
문화대 기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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