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고유가 대책이 고작 등유로 난방하는 400만여 가구에게 기름값 부담은 연 1만2,000원을 줄여주는 것 뿐인가.”
13일 정부가 발표한 고유가 대책을 놓고 ‘현실을 외면한 맹탕’ 대책이라는 비판여론이 거세다.
특히 “최근 유가급등에도 불구하고 유가와 함께 소득도 늘었기 때문에 난방이나 교통비 지출증가는 여전히 감내할 만한 수준”이라는 정부의 현실감 결여된 발표는 주유소에 갈 때마다 비싸진 기름값을 지불해야 하는 서민들에게 절망감을 주기 충분한 것이었다. 특히 지난달 말 청와대의 고유가 대책 마련 지시에 기대를 걸었던 ‘유류세 인하’가 사실상 무산됐기 때문에 실망이 더욱 크다.
권오규 경제부총리는 이날 당정협의에서 “현재 고유가는 구조적 문제로 단기간에 해결될 수 없고 세계 어느 나라도 세금을 깎아서 고유가에 대처하는 곳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석유 한방을 나지 않고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높기 때문에 유류세 인하는 바른 방향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유류 관련 탄력세율 적용 확대를 요구한 당의 요청을 거부했다.
당장 내년에도 8조5,000억원의 적자가 불가피한 나라살림에 국세 수입의 17%(2006년 기준)를 차지하는 유류세를 인하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은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해도 정부가 내놓은 이날 대책은 ‘생색 내기’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주로 서민난방에 사용된다는 이유로 지난 8월 세제개편안에서 특소세를 하향하고 판매부과금을 폐지하기로 했던 등유에 대해, 정부는 이번 대책에서 추가로 올해 동절기에만 한시적으로 탄력세율을 20%에서 30%로 인하키로 했다.
이에 따라 올 겨울 3개월간 현재 ℓ당 1,000원 내외인 등유가는 ℓ당 110원(이후엔 81원) 정도 인하된다. 하지만 현재 등유를 난방용으로 사용하는 가구는 전국에 400만 가구에 불과하고, 또 이들에게 돌아가는 가격인하 효과는 재경부 추산으로도 연간 1만2,000원~1만7,000원에 불과하다.
휘발유ㆍ경유 등 운행용 석유에 대한 세금인하를 끝내 외면한 이번 유가대책은 급변하는 에너지 소비시장을 제대로 읽지 못한 채 만들어진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크다. 재경부는 3년 전 조사를 근거로 가격이 10% 상승할 경우, 수요가 ▦휘발유 5.7% ▦경유 3.6%씩 감소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하지만 유가가 급등한 올해 3분기 차량 연료 판매량은 오히려 4년 여 만에 최고폭으로 증가했다.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유가가 급등하기 시작한 올 3분기 차량용 휘발유 제품의 소비는 오히려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7%, 경유는 6.4%가 늘어난 것. 자동차 보급률 증가와 달라진 생활상 때문에 자동차가 더 이상 일부 부유층에 국한된 사치가 아니라 일반 국민들이 더 이상 절약할 수 없는 생필품이 되었다는 명백한 증거다.
다른 대책들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대표적으로 기초생활수급자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난방용 심야전력요금을 20% 할인하는 방안이 대책에 포함됐다.
하지만 심야전력은 과도하게 불어난 수요 때문에 발전소 추가가동이 필요한 상황이고, 요금도 원가의 57%에 불과하다. 때문에 2001년 이후 누적적자가 2조원에 이르는 탓에, 64%가량 요금인상이 필요하다는 분석도 있다. 결국 에너지 절감을 위해 대폭 올려야 할 심야 전력 가격을 오히려 깎아주는 셈이다.
정부의 실망스러운 고유가 대책은 이번 정기국회에서 다시 한번 거론될 가능성이 높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여야 모두 유류세 인하를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기 때문.
통합신당 김진표 정책위의장은 “유류 탄력세율 제도는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 가까이 비정상적으로 치솟는 요즘같이 시기에 적용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라며 “재경위 세법심사를 통해 휘발유ㆍ경유에도 탄력세율 적용을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정영오 기자 young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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