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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책] 무진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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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책] 무진기행

입력
2007.11.22 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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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일이다. 오늘로 삶의 한 시기를 매듭짓고 세상으로 나가는 젊음에게 권할 수 있는, 단 한 권의 책이 있을까. 아마 그런 책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 돌이킬 때 아! 그 책이 있었지, 하고 떠오르는 책은 있다. "더 무엇을 말할 것인가. 여기 실린 소설들은 이미 우리 시대의 고전이다." 1970년대 중반에 '무진기행'과 '서울 1964년 겨울' '확인해본 열다섯 개의 고정관념' 등 김승옥(66)의 단편소설을 모아 출판한 단행본의 안날개에, 비평가 이어령(73)이 군말않고 '고전'이라 단언한 촌평이 실려있었다. 김승옥을 읽으며 이어령의 말에 수없이 고개를 끄덕이던 기억이 있다.

"한 번만, 마지막으로 한 번만 이 무진을, 안개를, 외롭게 미쳐가는 것을, 유행가를, 술집 여자의 자살을, 배반을, 무책임을 긍정하기로 하자. 마지막으로 한 번만이다. 꼭 한 번만. 그리고 나는 내게 주어진 한정된 책임 속에서만 살기로 약속한다… 덜컹거리며 달리는 버스 속에 앉아서 나는 어디쯤에선가 길가에 세워진 하얀 팻말을 보았다. 거기에는 선명한 검은 글씨로 '당신은 무진읍을 떠나고 있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라고 씌어 있었다. 나는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책읽기는 어린 나무가 가지를 뻗어 숲을 이뤄가는 과정과 같다. "내 이 세상 도처에서 쉴 곳을 찾아보았으되, 마침내 찾아낸, 책이 있는 구석방보다 나은 곳은 없더라." 움베르토 에코가 <장미의 이름> 서문에 인용한 것을, 소설가ㆍ번역가 이윤기가 멋드러진 우리말로 옮긴, 15세기 독일 신학자 아 켐피스의 말이다.

수능을 끝내고 자신만의 구석방에서 김승옥이 한국문학에 가져온 '감수성의 혁명'을 만나는 젊음은, 책읽기의 가지를 뻗어 이웃한 아름드리 나무들을 만나고 마침내 드넓고 깊은 지성의 숲길로 힘차게 나아갈 수 있는 하나의 나침반을 갖게 될 것이다.

하종오 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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