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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과의사 김희수의 눈과 마음과 세상] <6>62년 광복절에 김안과 개원…첫날 환자 15명 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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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과의사 김희수의 눈과 마음과 세상] <6>62년 광복절에 김안과 개원…첫날 환자 15명 진료

입력
2007.11.22 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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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봄 부산 제3육군병원에서 전역할 무렵, 부산대에 재직하던 P교수가 대학교수직을 제의해왔다. 솔직히 나는 교수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의사였던 큰형과 의논했는데 뜨악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 개업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전역을 하고 서울로 올라왔는데 개업 장소가 마땅치 않았다.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군사정권은 의료기관의 도시편중을 억제하고 의료균점을 이룬다면서 인구비례에 따른 개업허가제를 실시하고 있었다. 이미 종로구나 중구 등 시내 중심가에는 K안과 등 몇몇 유명 안과들이 자리 잡고 있어서 들어갈 수 없었다.

중학 선배인 영등포 충무병원장의 권유에 따라 영등포에서 개업하는 것을 검토했다. 당시 영등포구는 행정구역상 지금의 서초구부터 강서구 일대까지의 방대한 지역으로, 서울 인구 100만 명 중 약 30만 명이 거주했다. 그러나 영등포로터리를 제외한 주변 지역에는 주로 공장이 들어서 있었고, 목동을 비롯한 강서구 쪽은 온통 논밭이었다. 비만 오면 장화 없이 살 수 없다는 뜻에서 ‘진등포’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열악한 환경이었다.

마침 영등포로터리에 새로 지은 건물이 나타났는데 2층, 25평 규모로 보증금과 월세가 매우 비싼 편이었다. 이곳에 세 들어 62년 8월 15일 ‘김안과’라는 평범한 이름으로 개원했다. 당시는 대부분 자신의 성을 붙여 병원 이름을 지었다. 개업 첫날 15명의 환자를 진료했는데 처치 주사와 약까지 조제해 주고 2, 3원을 받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미국유학을 마치고 귀국할 때 가져온 몇 가지 새로운 장비와 미국에서 배운 최신식 의료 기술을 환자들에게 선보임으로써 좋은 홍보효과를 올릴 수 있었다. 70년에는 세 들어있던 병원 건너편에 88평의 대지를 구입해 지하 1층, 지상 4층에 건평 400여 평 규모의 건물을 지었다. 개업한지 8년 만에 내 소유의 건물을 지었다는 감동이 만만치 않았다. 안과라는 단일 과로는 전국에서 가장 큰 규모의 병원으로 발전해 의사도 4, 5명, 직원도 20여 명으로 증원됐고 이화여대 의대로부터 안과 레지던트도 받아들였다.

정부가 77년부터 500인 이상 사업장부터 적용하기 시작한 의료보험과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실시한 의료보호제도도 병원 발전에 큰 도움이 되었다. 거의 모든 의사들이 반대하는 가운데 희망하는 병원만 계약제로 시작했는데, 나는 미국에 유학할 때 Blue Cross, Blue Shield 등 의료보험제도를 경험한 바 있기 때문에 거부감을 느끼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의료수가가 낮아 모든 병원이 기피하는 산업재해 지정병원도 자진하여 지정 받았다.

이렇게 하자 전국 각지에서 환자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가난한 농촌을 벗어나 구로공단으로 몰려든 젊은 근로자들은 자신의 치료는 물론 고향의 부모님까지 모시고 와 치료 받도록 했다. 그 동안 돈이 없어 진료조차 못 받던 환자들이 의료보험 및 의료보호제도의 혜택으로 수술까지 받을 수 있게 되자 줄을 이어 찾아온 것이다.

늘어나는 환자를 감당할 수 없어 영등포 청과물시장 초입에 사 두었던 1,300평에 지하 3층, 지상 8층, 연건평 3,000평 규모의 병원을 완공했다. 86년 8월 15일 개원식을 가졌는데 이때 동양 최대의 단일 안과병원이라는 평을 받았다. 병원 명칭도 ‘김안과’에서 ‘의료법인 김안과병원’으로 바꾸었다. 87년 여름에는 하루 외래환자가 3,624명에 이르는 엄청난 진료 기록을 세울 정도로 환자가 몰려들었고, 94년에는 다시 지하 2층, 지상 6층에 858평 규모의 별관을 신축했다.

‘김안과병원’은 올해 개원 45주년이다. 현재 40여 명의 전문의와 250여 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으며 2006년 현재 외래환자 40만 명, 연간 수술 건수 1만5,000건으로 국내 최고를 기록하고 있다.

동양 최대의 안과병원으로 성장한 만큼 안과학 발전에 기여하겠다는 의무감으로 2003년 11월에는 나의 아호를 딴 ‘명곡(明谷)안연구소’를 설립했다. 이 연구소에서 수년 내 세계 안과학계를 선도할 좋은 연구결과가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건양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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