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소말리아 해적에 납치됐던 북한 선박 대홍단호 구출 작전에 나섰던 미 해군 구축함 제임스 윌리엄스호의 선행이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의 결과라는 점은 북미 관계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따지고 보면 윌리엄스호는 우연히 현장 부근에 머물렀던 것은 아니었다. 미국은 중동에 대한 전략적 가치가 높은 아라비아해 인근에서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호주 등과 연합함대를 구성해 해상 활동을 펴오고 있다. 그 동맹국을 묶는 해상작전의 틀이 PSI체제이고, PSI의 주요 목적 중 하나가 북한 선박의 감시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5년 전 예멘 부근 아라비아해로 거슬러 가보자. 대홍단호가 납치됐던 해역에서 멀지 않은 공해상을 항해하던 북한 선박 서산호에 스페인 해군 함정 2척과 헬기가 접근해 정선을 요구했다. 달아났지만 허사였다.
헬기에서 낙하한 무장 대원들은 서산호를 나포했고 몇 시간 후 미국 요원들이 승선해 시멘트 포대로 덮여 있던 화물칸에서 북한제 스커드 미사일 15기와 관련 부품을 찾아냈다.
당시 세계는 미국이 서산호를 어떻게 처리할지 주시했다. 북한의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 문제가 불거진 직후라 미국의 강경 대응이 예상됐다.
그러나 미국은 예멘 정부가 적법한 무기 수입이라고 주장하면서 주권침해를 강력히 항의하자 나포한 지 하루 뒤 서산호의 통과를 허용했다. 공해상에서 미사일 수송을 막을 수 있는 국제적법 근거가 미약했기 때문이다.
북한의 핵ㆍ미사일 수출 봉쇄에 골몰하던 미국은 이 사건을 계기로 PSI 구축을 서둘렀고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이듬해 5월 폴란드에서 PSI 국제회의를 제안했다. 같은해 6월 PSI 첫 회의가 열린 곳은 미국의 요청에 따라 서산호를 나포했던 스페인의 마드리드였다.
그런 까닭에 이번 대홍단호와 윌리엄스호의 만남을 인도주의의 차원에만 얽매 두기 어렵다. 5년의 세월을 두고 쌓인 대결과 갈등이 녹아 내리는 상징이기 때문이다. 눈여겨볼 점은 미국과 북한이 그 화해의 훈풍을 즐기고 있는 상황이다.
미 정부가 나서 북한 선박에 대한 지원을 홍보하더니 급기야 8일 북한이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테러와의 투쟁에서 북미 협력의 상징"이라고 치켜세웠다. 북한이 동해상에 미사일을 발사했던 1년여 전만 해도 상상하지 못할 장면이다.
대홍단호 사건을 전후로 북미 관계의 해빙을 알리는 일들이 봇물 터지듯 나오고 있다. 북한 태권도 시범단이 미국 순회 공연을 마쳤는가 하면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평양 공연 성사가 눈 앞에 와 있다.
워싱턴에서 콘돌리사 라이스 미 국무장관과 회담한 송민순 외교부 장관은 11일 미국이 머지않아 대북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와 적성국교역법 적용 해제를 결행할 것임을 암시했다. 북한과 미국이 합의한 핵 불능화 조치 등이 순조롭게 진행돼야 한다는 전제를 깔고 말이다.
북미가 모처럼 이룬 화해 분위기를 되돌리는 일이 생기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빌 클린턴 정부 말 미국의 정치적 상황과 북한의 어정쩡한 계산이 맞물리면서 핵과 미사일 문제 해결의 전기를 놓친 어리석은 상황이 되풀이 돼서는 안된다.
소말리아 해적들과 격투를 하느라 부상한 북한 선원들을 치료한 미군의 손길이 화해가 대결보다 소중함을 일깨워 주기에 더욱 더 그렇다.
김승일 국제부장 ksi810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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