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나지르 부토 전 파키스탄 총리가 페르베즈 무샤라프 대통령에게 퇴진을 촉구했다.
부토 전 총리가 무샤라프 대통령에게 육군참모총장에서 물러나길 요구한 적은 여러 차례 있었으나 대통령에서 물러날 것을 언급한 것은 처음으로, 무샤라프와 부토 간 권력분점 합의가 물 건너간 것이 아니냐는 추측을 낳고 있다.
부토 전 총리는 13일 CNN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무샤라프가 떠날 때가 왔다”면서 “그는 국민들의 신뢰를 잃었다”고 말했다. 부토는 이어 “무샤라프가 대통령 자리에 있는 한 총리 직을 맡지 않겠다. 그가 이제까지 내게 한 말들을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고 말해 향후 권력분점을 두고 무샤라프 대통령과 갈라설 뜻을 처음 밝혔다.
무샤라프 대통령이 3일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한 이후 반체제 인사들을 대거 체포하거나 해임하면서도 부토에 대한 대응은 의아할 정도로 느슨해 그간 양측의 권력분점 합의가 미국의 비호 하에 물밑 진행되고 있다는 의구심을 낳았다.
그러나 이날 부토 전 총리가 내년 1월 총선에 자신이 이끄는 파키스탄인민당(PPP)이 참여하지 않을 수 있을 뿐 아니라 나와즈 샤리프 전 총리 등 다른 야당 지도자들과 연합할 뜻이 있음을 시사하면서 무샤라프와의 관계에 선을 분명히 그었다.
사우디아라비아에 있는 샤리프 전 총리도 부토의 발언에 대해 “야당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긍정적인 발전”이라며 환영의 뜻을 밝혔다. 샤리프 전 총리는 3일 전 부토에게 무샤라프와의 관계를 끊는다면 협력할 용의가 있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고 덧붙였다.
부토의 갑작스러운 무샤라프 대통령 하야 요구 및 샤리프 전 총리와의 연합 논의로 인해 파키스탄 정국은 더욱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될 전망이다.
파키스탄 경찰에 의해 사실상 가택연금 상태에 있는 부토는 이날 7일 동안 외부출입을 제한하는 명령서를 발부 받았다. 라호르 경찰 당국은 명령서를 발부하기 앞서 경찰을 동원해 부토의 숙소를 완전히 포위하고 외부와의 접촉을 전면 금지했다.
부토는 현재 자신이 이끄는 파키스탄인민당 소속 간부의 자택을 임시 숙소로 이용하고 있는데, 명령서에서는 이 집으로 부토의 거주를 제한했다.
부토는 이날 페르베즈 무샤라프 대통령에게 국가비상사태 해제를 요구하며 라호르에서 수도 이슬라마바드까지 300km에 이르는 ‘대장정’ 시위를 벌일 예정이었다.
그러나 파키스탄 경찰이 부토가 차량행렬을 시작하기로 한 라호르 시내에 수천명의 경찰을 배치, 도심으로 통하는 주요 길목을 차단했으며 하루동안 집회 참여가 예상되는 정당 관계자들과 지지자 등 1,500명을 체포했다고 현지 언론들이 13일 보도했다.
황유석 기자 aquariu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