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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희의 막전막후] 국립극단 '테러리스트 햄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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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희의 막전막후] 국립극단 '테러리스트 햄릿'

입력
2007.11.22 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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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릿’은 연출가에게 세계관의 표명이자 해석을 던지는 하나의 도전적 장이 되곤 한다. 기국서에게는 1980년대 한국사회의 부조리와 폭력에 도발적 질문을 던지는 발화점이었고, 이윤택에게 햄릿의 세계는 무덤이었으며 이성열에게는 감옥, 원영오에게는 망자를 달래는 해원굿이었다.

젊은 연출가 배요섭에게는 유랑광대의 짐에서 풀려나온 놀이굿이었고 정세혁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로 가득 찬, 욕조 안의 햄릿을 선보인 바 있다.

지금 공연 중인 국립극단과 독일 연출가 옌스-다니엘 헤르초크와의 협력 작업 <테러리스트 햄릿> 은 ‘놀이판’ 햄릿을 부각시킨다. 8개의 샹들리에와 마루를 깐 돌출무대만으로 궁정 복도를 충분히 상기시키는 이번 무대는 삼면에 객석을 두고 햄릿을 놀이하고 있는 배우들에 주목하게 했다.

이는 액자틀에 갇히기 전의 셰익스피어 태생의 연극성을 회복하기 위한 연출가의 선택이자 엿보는 시선들 속에 내던져진 햄릿의 존재상을 드러내기에 적절한 것이었다.

여기에 희곡의 선 굵은 힘, 중세와 근대적 세계관 사이 구세대와 신세대간의 갈등과 충돌을 토대로 한 명확한 해석력은 연극놀음을 놀이 자체만을 위한 공허한 것이 아니라 주제를 향해 쌓아가는 정밀한 건축술로 느끼게 한다.

‘국립극장’의 표식도 선연한 간이의자를 심드렁하게 올려놓거나 현대성을 표상하는 물건들이 아무렇게나 등장한다. 호레이쇼는 디지털카메라로 증거를 수집하며, 펜싱 칼은 골프백에 담겨 등장하는 식이다. 클로디어스와 거트루드는 한바탕 탱고 춤으로 그들의 애욕을 표출하는 등 많은 무대 기호들이 동시대를 겨냥하고 있다. 그러나 인물들의 내면심리를 드러내는 동요와 대중가요의 편의적 사용은 시대를 혼돈케 하는 아쉬운 점도 있었다.

햄릿의 성격 면에서는 공격적이고도 적극적인 햄릿을 부상시켰는데, 우유부단하고 망설이는 사색가형 햄릿이 아니라 부단히 시도하고, 의심하며, 가장과 위장을 밥 먹듯 행하는 위악적이면서 분노에 피 끓는 햄릿으로 성격을 구축해간다. 이 ‘햄릿놀이’를 수행하는 배우 서상원의 캐스팅은 성공적인 것이었다. 극단 미추에서 오랫동안 관객과 직접 마주하고, 판놀음의 다양한 연기역량을 닦은 이 배우는 햄릿 역에 심리적 동화식으로 매몰되지 않고 놀이로서의 형식적 거리를 끝까지 유지하며 세 시간 여에 걸쳐 햄릿 역을 성실하게 수행한다.

하나의 세계관을 표명하는 데는 미약했지만 그간의 햄릿에 대한 고정관념과 비극의 장르 경계를 가볍게 뛰어넘고 있는 감각적인 이번 공연은 한국의 햄릿 공연사에서 개성적인 작품으로 기억될 것임에는 틀림없다. 11월 24일까지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극작ㆍ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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