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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문학상 본심 후보작] (3) 천명관·편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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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문학상 본심 후보작] (3) 천명관·편혜영

입력
2007.11.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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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명관 <유쾌한 하녀 마리사>

▲키워드로 본 후보작

작가론 키워드 : 안티휴머니즘

그는 이야기를 탐식하고 이야기를 조롱하며 이야기를 공격함으로써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다음 장면을 숨가쁘게 예상하는 독자의 호기심과 조바심을 이용하면서도 배반한다. 이야기의 옷자락을 붙잡고 어떤 희망의 실마리를 잡으려는 독자의 휴머니즘적 기대를 산산조각 낸다. 그의 이야기는 아무런 이데올로기적 압력이 느껴지지 않는데도 한없이 불온하며 불길하다.

소설을 통해 아름답고 따뜻한 세계의 희망을 발견하려는 독자의 ‘착한’ 열망을 미묘하게 조소하면서, 미추의 분별 자체를 초월해버린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그는 감동과 교훈의 시대가 끝난 이야기의 폐허 위에서, 그 잔해들을 긁어모아 인간의 길들여진 상상을 파괴하는 이야기의 괴물을 만드는, 소설계의 프랑켄슈타인이다.

작품론 키워드 : 안티내러티브

그의 이야기에는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의 공식이 없다. 모든 장면이 발단이며 모든 장면이 절정이자 파국이다. 그는 ‘소설이란 무릇 이런 것이지’라고 믿어왔던 독자의 마지막 기대마저 의도적으로 배반한다. 철저히 이야기의 시스템을 유지하면서도 근원적으로 이야기의 이야기스러움을 외면하는 그의 이중성은 독자로 하여금 지금까지 믿어왔던 소설의 정의 자체를 의심하게 만든다.

그의 소설에서는 이야기를 지독히도 증오하는 자가 끈질기게 이야기를 창조하는 듯한 역설적 광기가 느껴진다. 그의 소설의 진정한 주인공은 특정한 인물이 아니라 이야기 그 자체이며, 이야기를 통해 세계에 말을 걸고픈 인간의 욕망 그 자체다.

<유쾌한 하녀 마리사> 키워드 : 하이브리드

그는 활자의 가능성과 영상의 가능성을 소설이라는 종합예술의 장 위에서 동시에 극대화한다. 그에게 소설의 한 페이지는 영화의 스크린과 동종이형의 놀이터가 아닐까. <유쾌한 하녀 마리사> 에서 그는 활자와 영상의 차이를 무한히 좁혀 나가기도 하고, 활자와 영상의 차이를 그때마다 유쾌하게 향유하기도 한다.

소설은 다른 예술 장르의 얌전한 부분집합이 아니라, 모든 예술 장르가 가진 제멋대로의 개성이 소설 속으로 신명나게 녹아들 수 있다는 점을, 이 작품집을 통해 증명한다. 누군가 ‘소설이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천명관의 인물들은 말할 것이다.

꼭 무언가가 되어야 하냐고. 그의 작품은 무엇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되지 않기 위해 무형의 극단으로 달려간다. 소설은 아무 것도 애써 되려고 하지 않음으로써,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그 모든 것이 될 수도 있다.

■ 미니인터뷰

“복잡한 수사보단 정확한 전달 중시… 내 소설은 마지막으로 가는 과정 진술”

-<유쾌한 하녀 마리사> 엔 외국 배경의 작품이 많다.

“늦깎이 신인 소설가로서 다양한 시도를 해보는 것이다. 한국 소설에 우리만의 이야기가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국을 무대 삼아 좀 더 보편적인 것을 말하고 싶었다. 20대 때 존 업다이크를 읽으며 관념적이기보단 일상과 밀접히 관련된 소설에 더 매력을 느꼈다.”

-수록된 11편의 단편 중 문학상 후보로 거론된 작품이 전혀 없었다.

“한국문학에 새로운 기운을 일으킨다는 생각으로 창작했는데 아예 언급을 않더라(웃음). 나보다 어린 30대 작가들을 보면 등단한 지 10년이 넘는데도 작품만으론 생계가 안되는 경우가 많다. 단편 위주의 획일적 미학만 생산시키는 문단 시스템에 책임이 있다.”

-번역투 문장이 많고 인물간 대화가 연극적이다.

“미국 소설, 영화를 좋아하다보니 그런 문체에 익숙하다. 번역투는 간결하고 정확하다. 복잡한 수사보단 정확한 전달에 치중한다. 연극적인 것은 내 취향이다. 영화 시나리오 쓸 때부터 연극적 요소가 많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기존 작가들의 단편과 이야기 전개 방식이 많이 다르다.

“마지막 장면의 이미지가 확실히 떠오를 때만 작품을 쓴다. 묘사보다 서사성, 플롯을 중시하는 내게 소설이란 마지막 장면으로 가는 과정 진술이다.”

■ 약력

1963년 경기 용인 출생. 대학엔 안 갔음. 스콜세지를 편애하는 시네마 키드. 영화 만들던 군대 동기 사무실 드나들다 영화계 입문. <총잡이> <북경반점> 시나리오 집필. 마흔 살 되던 2003년 문학동네신인상 받으며 소설가 등단. 2004년 장편 <고래> 로 문학동네소설상. 올 초 원주로 이사. 2년 전부터 천체망원경으로 별 보는 취미 들임. 자칭 ‘가진 책이 가장 적은 소설가’.

정여울ㆍ문학평론가

■ 편혜영 <사육장 쪽으로>

▲ 키워드로 본 후보작

작가론 키워드 : 불쾌의 미학

편혜영은 기왕의 한국소설에서 볼 수 없었던 유니크한 길 하나를 개척하고 있는 작가다. ‘불쾌의 미학’이라 이를 수 있는 길이 그것이다. 고통스런 불쾌와 불편의 반복강박이 강렬한 사회비판의 효과로 이어지는 지점에, 편혜영 소설의 미학이 있다. 과연 첫 소설집 <아오이가든> 은 갈기갈기 찢긴 시체들과 내장들, 부패한 오물과 피고름이 발산하는 악취로 가득했다. 그 악취와 더불어 오롯이 드러나는 것은 역겨워 차마 마주할 수 없는 이 세계의 심연이며, 고통스런 진실이다.

편혜영은 그렇게 고여서 썩어가는 세계와 그 속을 부유하는 살아 있는 시체들의 근황을 냉정한 시선으로 해부해왔다. 세계는 닫혀 있으며, 출구는 없다. 모든 것이 죽음에 침식된 세계, 그 자신마저도 이미 죽음인 세계. 편혜영의 소설이 그리는 것은 바로 그것이다. 살아 있는 시체들의 낮이다.

작품론 키워드 : 악몽

단편 ‘저수지’ ‘맨홀’ ‘문득’이 그러했듯, <아오이가든> 의 세계는 그 자신이 이미 죽어 있는지 모르는 시체들의 백일몽이었다. 두 번째 소설집 <사육장 쪽으로> 는 더 나아간다. 비현실에서 현실로, 이미지에서 서사로. 그리하여 이것은 이제 겉으로 안녕해보이지만 결코 안녕하지 못한 현실의 악몽이다. 전원생활의 꿈은 개 짖는 소리와 함께 걷잡을 수 없는 수렁으로 휘말려가며(‘사육장 쪽으로’), 꿈에 부푼 여행은 파국으로 끝난다(‘소풍’). 도시 전체가 사육장이고 정글이다. 그리고 산 자들은, 있을 리 없는 희망을 찾아 유령처럼 도시를 떠돈다. 그 자신이 이미 죽어 있는지 모르는 산 자들의 악몽이 여기에 있다.

<사육장 쪽으로> : 섬뜩함

소설집 <사육장 쪽으로> 에서, 현실에 대한 묘사가 차곡차곡 쌓여갈수록 익숙한 현실은 낯설고 기괴한 것으로 전도된다. 이를 섬뜩함의 미학이라 이른다. 작가의 냉정한 시선에 포착된 현실의 실상은 악몽이다. 건조한 문체에 실린 냉정한 시선은 대책 없이 악몽으로 휘말려 들어가는 일상을, 그리고 차라리 그 자체가 악몽인 일상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악몽의 바깥은 없다.

이것은 다른 어떤 삶의 가능성도 질식시키는 자본과 시장의 사육장에 갇혀 절망적으로 허우적대는 삶에 대한 드라마틱한 은유다. 은유를 발설하는 기교가 또한 정교하며, 악몽은 리얼리티를 얻었다. 이로써 편혜영의 소설은, 현실을 말하는 2000년대 한국소설의 새롭고도 개성적인 발성법 하나를 발명했다. 김영찬ㆍ문학평론가

■ 미니인터뷰

“흥미있는 기법이 그로테스크와 부합… 일부러 기괴하게 쓰는건 아니다”

-편혜영 소설 하면 ‘그로테스크’가 떠오른다. 왜 그로테스크인가.

“작품을 왜 그렇게 쓰는지 보단 세계관이 어떻길래 그런 작품이 나오는가를 묻는 질문인 줄 안다(웃음). 따져보면 내 생각과 작품이 아주 괴리된 건 아닐 것이다. 하지만 기괴함을 추구하려 작품을 쓴다기보단, 내가 재미있어 하는 소설적 기법들이 그로테스크와 부합하는 것 같다.”

-재미있어 하는 소설 기법이란.

“서사보단 이미지 중심으로 작품을 꾸려나가는 걸 선호한다.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를 극단까지 밀고 나가면 묘한 아름다움이 생겨난다. 문장은 수식 없이 간명한 쪽이 좋다. 건조한 단문은 이미지를 선명하게 부각시키는데 적합하다. 이미지를 살리려 일부러 복잡한 구성을 피한다.”

-심상을 떠올리는 훈련을 따로 하나.

“그런 건 없다. 난 장소를 안가리고 글을 쓴다. 시끄러운 카페에서도 얼마든지 그런 이미지를 길어낼 수 있다(웃음). 싫어하는 것, 불쾌해하는 것을 떠올린다. 쥐, 작은 벌레 등 작품 속 소재들은 대개 내가 싫어하는 것들이다.”

-그로테스크의 기조는 계속되나.

“한때 엽기란 말이 유행해 내 소설을 그렇게 부를 땐 불편했지만, 덕분에 많은 신인들 가운데 개성적 작가로 호명될 수 있었다. 하지만 난 계속 변화하고 있고, 같은 창작집 속 작품들도 조금씩 다 다르다. 앞으로 어떤 작품을 쓸 지는 직접 쓰기 전까진 알 수 없다.”

■ 약력

1972년 서울 출생.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한양대 대학원 국문과 졸업. 석사 논문은 <박완서 가족소설 연구> . 2002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소설집 <아오이가든> . 다수의 자격증을 가진 6년차 직장인. 음악과 체육을 싫어함. 가만히 앉아 있기, 모여서 떠들기 등 정적인 것을 좋아함. 재치있는 농담을 잘한다는 주변의 평. 커피보다 차, 맥주보다 소주를 선호.

이훈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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