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예술ㆍ디자인 분야 가운데, ‘젊은이가 성공하기 가장 어렵고, 비평적 기능을 행하는 실험작은 불가능에 가까운 영역’은 어딜까? 정답은 건축이다.
따라서 비니 마스(1959년생), 야곱 반 레이스(1964년생), 나탈리 데 뷔레스(1965년생)가 1991년 조직한 건축스튜디오 MVRDV의 성공은 아주 이례적이라고 볼 수 있다. (회사의 이름은 3인의 이름에서 앞 글자만을 따 모은 것.) 이들의 특기는, 수집된 방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예상 밖의 문제 해결법-대개 첨단 엔지니어링 기술에 힘입은-을 제시하는 것이다.
MVRDV의 국제적 득의작은 55세 이상의 장년층을 위한 집합 주거인 ‘워조코’(1997)였다. ‘주거 공간의 확장’이라는 요구를 충족하는 동시에 주변의 녹지를 훼손하지 않으려고, 이들은 건물의 파사드(입면)에서 뜬금없이 돌출하는 켄틸레버 구조체를 시도했다. 이 당돌하고 효율적인 디자인은 많은 건축 애호가들에게 감명을 줬고, 이후 점차 큰 프로젝트를 수주하게 됐다.
특히 독일 하노버 엑스포에서 선뵌 네덜란드 전시관(2000)은 상이한 기능의 건축물들을 하나로 합체시킨 기형적 모습이었기에 대중에게 충격을 줬다. 그리고, 컨테이너를 쌓아 만든 가건물의 문법을 응용한 ‘실로담’(2002)이라는 집합주택은 건축 관계자들에게 큰 영감을 불러일으켰다.
근작인 ‘쌍둥이 주거’(2006)는 곡물 저장고를 집단주거로 탈바꿈시키는 프로젝트였는데, 기존의 아파트 구조를 안팎으로 뒤집어놓은 모양이다. 즉, 텅 빈 사일로 내부로는 복도와 계단 등의 장치를 덧붙이고, 외부로는 각 주거의 유니트들을 설치함으로써, 기존의 문법을 계승하면서도 과거의 형식과는 차별화된 독특한 아파트를 실현한 것이다.
하지만, 나를 정말로 감탄케 만든 것은 가상의 프로젝트였다. 네덜란드 농림부의 발주에 의한 연구 작업 ‘돼지도시’(2001)가 그것. MVRDV은 사육-도살-수출의 전 과정에서 ‘돼지와 농부 모두가 쾌적하게 일생을 보내고 노동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자급자족되는 아파트형 농장’을 제안했다.
이들은 “돈사를 사과나무를 심은 거실형으로 변화시키고 엘리베이터로 돼지를 재배치시키는 등, 생태적 요구와 산업적 요구를 아우른 건축 대안”이라고 천연덕스레 주장한다. 정확한 데이터, 사회 병리적 지점, 동물의 권리, 모더니스트적 미래의 비전 따위를 재료 삼은 기묘한 건축의 대위법이, 망상적 미래상을 제시하는 꼴이다.
실제로 구현될 디자인은 아니지만, ‘돼지도시’의 동영상을 보노라면, 누구나 도시에서의 인간의 삶을 돼지의 그것에 비교하게 되고, 환경론자들이 주장하는 ‘정치적으로 올바른’ 양돈 사업이 지닌 논리적 모순을 실감하는 동시에, 매사에 과도한 합리성을 추구하는 디자이너들의 ‘돌팔이 처방’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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