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는 11일 기자회견에서 박근혜 전 대표의 협력을 이끌어 내기 위해 구체적 카드를 꺼냈다. 자신을 최대한 낮추면서 화합의 진정성을 보여주는 데도 주력했다.
사흘간의 고심 끝에 이 후보가 내놓은 화합책의 핵심은 대권ㆍ당권 분리와 사실상의 내년 총선 공천권 보장이다. 이 후보는 “권력분산 정신에 충실한 현행 당헌ㆍ당규는 대선 전이든 후든 지켜져야 한다”고 못 박았다. “강재섭 대표를 중심으로 현행 당헌ㆍ당규가 정해 놓은 절차에 따라 대선과 총선을 치루게 될 것”이라는 말도 했다. 이는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대통령 직무 수행에만 전념할 뿐 당내 문제는 관여하지 않고, 총선 공천에도 개입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이 두 가지 사안은 박 전 대표 측에서 일찌감치 문제를 제기해오던 것들이다. 내년 총선에서 물갈이 대상이 되지 않을까 전전긍긍했던 의원들이 박 전 대표측에 많았던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 후보는 이런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 내년 7월까지인 강 대표의 임기를 보장하고, 강 대표 체제 하에서 총선을 치른다는 사실을 재확인했다.
현행 체제를 상징하는 강 대표에게 힘을 실어줌으로써 박 전 대표의 지분을 포함한 기존의 당내 역학구도를 흔들지 않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한 셈이다. 이 후보와 박 전 대표, 강 대표와의 3자 정례 회동을 추진하겠다는 것 역시 박 전 대표측의 생각을 충분히 반영하겠다는 의지 표현이다.
이 후보가 박 전 대표를 ‘국정 현안을 협의할 정치적 파트너, 소중한 동반자’로 설정한 것도 주목할만한 대목이다. ‘파트너’라는 표현은 사실상의 권력분점, 공동정권 수립의 의미도 담고 있다는 해석이다.
회견문 작성을 주도한 박형준 대변인은 “무슨 거래를 하는 듯한 모습으로 비치면 안되기 때문에 현 시점에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할 수는 없다”며 “다만 미국의 경우 ‘파트너’ 관계는 대통령과 부통령 관계를 지칭한다. 그만큼 국정운영의 모든 면에서 같이 하겠다는 그런 자세를 강조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후보는 또 진정성을 보이는데도 애를 썼다. 박 전 대표의 협력은 진심으로 다가갈 때 가능하다는 인식에서다. 이 후보가 이날 “제가 부족한 탓” “계산하지 않고 소통의 정치와 마음의 정치를 펼치겠다”고 말한 것은 이런 맥락이다. 이 후보의 한 측근은 “기자회견에서 가장 신경 쓴 대목이 박 전 대표에게 마음을 전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후보는 이날 이회창 전 총재 출마에 대해선 “정통성 있는 후보가 정권을 교체하는 것이 역사의 순리”라는 말로 명분을 빼앗았다. BBK 의혹에 대해서도 전혀 문제가 없다는 자신감을 내비치며 민심을 다잡았다.
정녹용 기자 ltre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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