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는 본의 아니게 ‘정치 실험’ 중이다. 돈도, 조직도, 사람도 없이 갑자기 선거 판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9일 출범시킨 초미니 선거대책기구부터가 그렇다. 실용성과 기동력을 내세운 선대기구는 전략기획ㆍ정책ㆍ조직ㆍ홍보ㆍ공보 등 다섯 개 실무팀만으로 단출하게 구성됐다. 강삼재 전 한나라당 사무총장이 캠프 사령탑 격인 전략기획팀장을 맡았고, 이 전 총재의 오랜 측근인 이흥주 전 특보가 홍보팀장에 임명됐다. 정책팀장엔 이 전 총재의 총리 시절 정무수석 비서관이었던 윤홍선씨가, 조직팀장엔 이 전 총재 후원회 부회장 출신인 김원석 전 경남도지사가 기용됐다. 언론인 출신의 이영덕 공보팀장을 제외하면 ‘식구들의 조직’인 셈이다.
팀원은 박사급 전문 인력을 중심으로 영입 중이고, 지방 조직은 각 지역 지지자들을 묶어 선거연락 사무소 단위로 관리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캠프의 핵심인 대변인은 아직까지 공석이다. 이 전 총재의 나이와 이미지를 감안해 40대 젊은 대변인을 물색 중이지만 인물난에 시달리고 있다.
서울 중구 남대문로 단암빌딩에 차려진 선거 캠프엔 대변인 말고도 없는 게 많다. 3개 층에 걸쳐 있는 사무실이 100여평밖에 안 되다 보니 팀장들의 전용 사무실도, 책상도 없어 하루종일 이 전 총재 집무실에 모여 앉아 선거 대책을 논의한다. 8, 9일 지지자 100여명이 돕겠다고 몰려 들었지만 이흥주 팀장이 “공간이 좁으니 현장으로 나가는 게 도와 주는 것”이라고 되돌려 보냈다.
사무실에 상근하는 직원은 팀장 5명을 합해 10여명뿐이다. 그나마 대부분 자리가 없어 기자들 사이에 끼어 앉아 휴대폰으로 업무를 보고 있다. 전화는 빗발치지만 “아직 공식 기구가 마련되지 않아서…”라고 끊는 전화가 태반이다. 이 전 총재의 지인과 지지자들은 좁은 사무실을 서성이다 “대한민국 선장이 되겠다는 사람의 캠프가 구의원 선거 사무실보다 못해서 되겠느냐”고 혀를 찼다.
캠프 업무도 갈팡질팡이다. 핵심 인사들이 모여 선대기구를 짠 8일 밤엔 기자들을 통해 부랴부랴 이명박 후보의 선대위 조직표를 구하기도 하고, 다음 주 이 전 총재의 지방 투어 취재 일정을 조정하기 위해 필요한 기자 명단을 달라고 한나라당에 SOS를 치기도 했다. 이러다 보니 정책 공약과 메시지를 마련하는 작업은 2순위로 밀려나고 ‘바람’에 선거 승패를 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런 진풍경이 한 정치학자의 평가처럼 ‘한풀이 즉석 출마’에 따른 헤프닝으로 끝날지, 성공적 실험이 될 것인지가 주목된다.
최문선 기자 moon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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