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ㆍ아프리카 45개국 67명의 해외 작가가 참석하는 국제 문학행사 ‘2007 아시아 아프리카 문학 페스티벌-전주’(Asia Africa Literature Festivalㆍ이하 AALF)가 8일 오후 전주 전북대에서 열린 개막식을 시작으로 11일까지의 본행사에 들어갔다. 국내에선 고은, 김지하, 황석영, 황지우 등 246명의 문인이 참여한다.
백낙청 AALF 조직위원장은 개회사에서 “서유럽과 북미 중심의 편향에서 벗어나, 두 대륙이 진정한 소통을 통해 오랜 세월 펼쳐온 값진 예술과 미학의 응당한 몫을 되찾게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노벨문학상 후보에 자주 거론되는 세계적 작가들로, 각각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대표해 개막연설을 한 고은(74) 시인과 이집트 소설가 나왈 엘 사다위(76)를 8일 만나 양 대륙의 문학 교류가 갖는 의미와 전망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아울러 전주를 비롯, 전북 각지에서 14일까지 열리는 AALF 행사를 소개한다.
프로그램 어떻게 진행되나언어·여성·평화 등 5개분과 활동…인기작가 사인회 등 대중행사도
AALF는 본행사와 문학 대중 행사로 나뉘어 치러진다.
전주 전북대와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진안 전통문화전수관에서 열리는 본행사는 디아스포라, 언어, 여성, 평화, 특별 등 5개 분과의 대표 작가 연설회(9일) 및 분과별 발표(9~11일)로 진행된다.
디아스포라와 언어 분과 대표 작가 연설은 팔레스타인 난민으로 오랜 유랑의 삶을 살아온 시인 마흐무드 다르위시(66)씨와, 1960년대 흑인소년과 백인소녀의 성관계를 묘사한 작품을 썼다가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에 의해 강제 추방돼 유럽, 미국 등지에서 체류 중인 남아공 소설가 루이스 응코시(71)씨가 각각 맡았다.
여성 분과는 <남아시아 여성주의 소설> 이란 단편소설집을 책임 편집한 방글라데시 소설가 셀리나 호세인(60)씨, 평화는 <무기의 그늘> <손님> 등의 소설을 통해 갈등의 세계상을 묘파해온 황석영(68)씨가 대표 연설을 한다. 손님> 무기의> 남아시아>
94년 후투족이 50여 만명의 투치족을 살해한 '르완다 학살' 때 남편과 두 자녀를 잃은 욜란데 무카가사나(50)씨는 '분쟁 지역의 작가들'을 주제로 한 특별 분과의 대표 작가를 맡았다. 참가 작가들은 11일 오후 각 분과에서 도출된 합의와 공감을 담은 '전주 선언'을 발표한다.
전주 코아아울렛에 마련되는 'AALF 문학관'에선 14일까지 다채로운 문학 대중 행사가 열린다. 신경림, 문정희, 정양, 오세영, 강은교, 정호승 시인 등의 시낭송회와 시노래 모임 '나팔꽃'의 공연이 매일 개최된다.
김훈, 은희경, 안도현, 공지영 등 인기 작가 사인회와 10일 오후 1시부터 열리는 동향(경북 김천) 작가인 문태준 시인과 소설가 김연수씨의 토크쇼도 눈에 띄는 행사다.
젊은 국내 시인, 소설가들이 최신 문학 이슈를 놓고 격론을 벌일 '젊은 작가 맞장토론'은 11일 오후 6시에 열린다. 행사 기간 동안 문학관에 설치되는 아시아, 아프리카, 한국 문학 부스에선 주요 작가 소개 등 문학 자료가 전시된다.
■ 고은 - 엘 사다위 대담
고은= 아시아와 아프리카는 서로 미지(未知)다. 안다고는 하지만 풍문으로만 알았다. 이건 일종의 무책임이다. 이제 서로 만나서 풍문을 이겨내고 소통을 해야 한다. 10년 전 이집트의 룩소르, 알렉산드리아에 가서 헬레니즘의 흔적을 살폈다. 이집트는 지구상 문화의 시작이다. 인류가 직립인간으로 거듭난 곳도 아프리카다. 세계 모든 인간들이 아프리카에 근원적 빚을 지고 있다.
나왈 엘 사다위= 보통 이집트 문명하면 고대 문명을 가리킨다. 하지만 문명은 시대, 지역을 관통해 연결돼 있다. 죽은 문명과 살아있는 문명을 따지기 힘들고, 주류와 소수 문명을 가릴 수도 없다. 모든 문명은 닮았고 보편화됐으며,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며 발전한다. 작가는 이런 문명의 운명을 깨닫고 순수한 정체성이란 신화를 넘어 더 넓은 비전을 주는 자다. 국적, 종교에 따라 문명을 가르는 것이 아니라 모든 문명을 인간화하는 존재다.
고은= 아시아ㆍ아프리카 문학엔 서방이 개입돼 왔다. 우리 각자가 근대문학의 형식을 서방에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고유의 탁월한 고전이 있었음에도 말이다. 이제 우리는 근대문학을 각자 자기화시켜서 자기 문학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문학이 세계 문학에 얘기할 것이 많아졌다.
사다위= 서구 중심의 질서가, 국가에서 개별 가정까지 가치체계를 지배하고 있다. 이런 부정한 상황은 필연적으로 불협화음을 낳는다. 인간에겐 창조성이 있기 때문이다. 창조성은 지배 권력을 비판하고 도전하는 자유와 용기에 기초하고 있다.
고은= 나는 한국의 남자고, 당신은 이집트의 여자다. 당신은 이슬람 세계에서 여성을 인간으로 드높이기 위해 싸워온 사람이다. 한국엔 유교적 전통이 온존하지만 여성의 위상도 많이 높아진 상황이다. 아랍 세계에서 여성의 사회적 위상은 많이 나아졌는가.
사다위= 나는 이슬람 교도지만 남성 중심의 이슬람 문화와 공존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이슬람 각 정파마다 학교를 많이 세우는데 여전히 여학생 머리에 베일을 씌우는 곳이 많다. 한편에선 매우 세속적인 문화가 자리잡고 있다. 미국식 소비주의와 이슬람 근본주의가 공존하는 셈이다. 나는 문학을 통해 다양한 여성의 목소리를 들려주고자 힘써 왔다.
고은= 아랍, 아프리카 문학이 동아시아의 문학과 보편성이란 이름으로 묶일 순 없다고 본다. 우리는 같지 않다. 하지만 그 다름이 중요하다. 다른 것끼리 발견하고 발견당하는 것이 아시아ㆍ아프리카가 만나는 목적이다.
사다위= 나 역시 자기 정체성만 앞세우는 정치적 성향들과 싸우고 있다. 사람들은 자기 종교, 성별, 인종을 내세우며 다투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단지 인간일 뿐이며 서로 닮아 있다. 그것이 축복이자 갈등 해결의 실마리다.
이훈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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