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장들의 불꽃 튀는 신경전에 도쿄돔마저 긴장했다.
제3회 코나미컵 아시아시리즈 우승을 놓고 자존심 대결을 벌일 SK 김성근(65) 감독과 주니치 오치아이 히로미쓰(54) 감독. 이들은 결전을 하루 앞둔 7일 끝내 선발투수를 공개하지 않았다. 도쿄의 날씨는 가을처럼 화창했고, 도쿄돔에는 바람 한 점 없었지만 양 팀 사령탑의 신경전에 찬바람이 씽씽 부는 것처럼 분위기가 썰렁했다.
SK가 훈련을 시작한 오후 4시에 주니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오치아이 감독은 “선발투수를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 내일 공개하겠다”고 연막을 피웠다. SK의 특징과 전력을 잘 모른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니혼햄과의 일본시리즈에서도 ‘선발 감추기’를 했었다. 그러나 일본 취재진은 센트럴리그 탈삼진 2위 나카타 겐이치(177개)가 SK전 선발로 유력하다고 귀띔했다. 오차아이 감독이 SK를 경계한 나머지 선발 공개를 꺼린 셈이다.
김성근 감독은 주니치가 끝내 선발을 공개하지 않았다는 소식을 듣고 껄껄 웃었다. 짐작했었다는 웃음이었다. 김 감독은 “당초 계획대로 김광현을 선발로 기용하려고 마음 먹었는데 오늘 구위가 너무 나빠서 밤에 고민해 보겠다”고 말했다.
김상진 투수코치는 주니치가 선발을 감추는데 우리가 괜히 밝힐 필요가 있느냐고 했다. 일본 취재진의 질문에 김 감독은 결승에 진출하기 위해 투수진을 어떻게 운영할지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안방마님 박경완과 4번타자 이호준은 기자회견에서 과감한 우승 선언으로 일본 언론의 관심을 모았다. 박경완은 “코나미컵이 벌써 세 번째인데 한국이 우승한 적이 없다. 우리 SK가 한국에 첫 우승을 안기겠다”고 말했다. 일본 취재진이 잠시 웅성거리자 마이크를 넘겨받은 이호준은 “우리가 일본에 온 건 이기기 위해서다. 우승하려면 주니치를 꼭 이겨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SK는 시범경기부터 정규시즌, 한국시리즈까지 모두 우승을 차지했다. 한국시리즈 우승은 지난 2000년 팀 창단 후 처음이다. 주니치도 1954년 이후 무려 53년 만에 일본시리즈를 제패했다. 오랜 숙원을 푼 한국 비룡(SK)과 일본 용(주니치)의 전쟁은 일찌감치 시작됐다.
도쿄(일본)=이상준 기자 j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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