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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 칼럼] 김정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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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 칼럼] 김정환 생각

입력
2007.11.08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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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좀 사사로운 이야기를 하고 싶다. 쉰네 살 먹은 사내 얘기다. 그 사내 이름은 김정환이다. 드문 성도 아니고 드문 이름도 아니니 남북 조선 땅엔 수많은 김정환이 살고 있겠지만, 내가 아는 김정환은 딱 한 사람이다.

<지울 수 없는 노래> 의 시인 김정환. 이런 공적 공간에서 사적 교분을 이야깃거리로 삼는 것이 마땅한 짓은 아니겠으나, 김정환씨의 반생이 사사롭지만은 않았으니 너그러이 보아 넘겨주셨으면 좋겠다.

김정환씨는 1980년 군사정권이 <창작과 비평> 을 폐간하기 바로 전, 그 계간지를 통해 문단에 나왔다. 스물일곱 살 때였다. 가장 가까운 시점에 낸 시집이 올해 나온 <드러남과 드러냄> 인데, 이것이 시인의 몇 번째 시집인지 나는 모른다. 어쩌면 시인 자신도 확실히는 모를지 모른다. 시를 폭포처럼 쏟아냈으니.

● 미적 단단함과 정치적 단단함

넉넉하면 풀어지기 십상이지만, 그것이 철칙은 아님을 김정환씨의 언어는 보여주었다. 한 세상을 적바림하고 또 다른 세상을 풀무질하는 그의 언어들은 30년 가까운 세월의 과로 속에서 두툼히 감기면서도 단단함을 잃지 않았다.

어떤 종류의 기율이나 품격이라 할 만한 그 단단함은 평론과 미셀러니와 소설과 공연대본을 가로지르는 그의 산문에서도 한결 같았다. 그 단단함의 적잖은 부분은 미적 단단함일 뿐만 아니라 정치적 단단함이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청년 김정환은 글쟁이였을 뿐만 아니라 운동가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1970년대 운동가들의 전형적 행로대로 그는 첫 옥살이 뒤 강제징집됐고, 제대한 뒤에도 구치소와 교도소 언저리에서 살았다.

내가 그를 사적으로 알게 된 것은 한국 민주주의가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 1980년대 말이다. 그러니까 김정환씨가 자신의 원기를 글쓰기 못지않게 운동에 쏟아부었던 청년시절을 나는 모른다.

글쟁이로서 그리고 운동가로서 그가 내비친 사회정치 전망은 나로선 감당하기 힘든 것이었다. 내가 그를 알게 되고 난 뒤로도 꽤 오랫동안 그가 간직했던 사회적 전망 속에선, 태고 이래의 계급구조가 편평하게 허물어져 있었다.

나는 그런 세상을 그려볼 수 없었다. 내가 사는 동안 그런 세상이 오지 않으리라 여긴 정도가 아니라, 호모 사피엔스의 종적 한계 때문에 그런 세상은 영원히 오지 않으리라 여겼다.

그래도 나는 김정환씨와의 자리가 편안했다. 그가 자신의 생각을 주위 사람들에게 강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가 이념적으로 진지하지 않았다는 뜻일까? 차라리, 세상에는 앙상한 이념의 언어로 채울 수 없는 틈들이 많다는 것을 그가 알았다는 뜻이리라.

술자리 바깥에서 그를 본 일이 거의 없는 터라, 내가 아는 김정환씨는 술자리의 김정환씨가 전부다. 술자리에서, 김정환씨는 슬겁고 호탕하다. 그 슬거움과 호탕함 때문에, 나는 한 때 그에겐 친구만 있고 적은 없다 여겼다.

그 사실이 고까워서 그에게 더러 투정을 하기도 했다. 그를 좀더 알게 되면서, 나는 그 판단이 잘못이었음을 깨달았다. 그도 싫은 사람이 있지만, 그 싫음을 널리 드러내는 걸 아름답지 않다 여길 뿐이다.

● 이념의 언어로 채울 수 없는 틈

김정환씨가 올해 백석문학상을 받는다. 등단한 지 27년이 지나, 무슨 상의 수상자로 이름을 내밀기엔 좀 쑥스러운 나이가 돼, 처음으로 받게 된 상이다.

상이라는 게 으레 그렇듯 문학상에도 이런저런 정치와 미적 편견이 개입하겠으나, 나는 김정환씨가 그 동안 아무런 상도 받지 못했다는 게 좀 기이했다. 한국에 문학상은 너무 흔하고, 그의 재능은 저주받은 재능이 아니었고, 그의 존재는 주변적 존재가 아니었으니 말이다.

초기의 김수영문학상이 그에게 돌아가지 않은 건 그 상의 공정성을 크게 해칠 만했다. 백석의 시세계와 김정환의 시세계가 닮았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김정환씨가 상을 받게 됐다는 소식을 한 친구에게서 전해 듣고, 마음 한 구석이 파드득 설렜다.

고종석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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